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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한창 진행 중인 지난 7일 오후. 일정을 끝낸 뒤, 차기작을 준비 중인 한 감독을 만났다. 올해 활동이 없었으니 여타 다른 행사에는 참석하지 않았어도 개막식에는 얼굴을 비칠 법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감독은 초청을 꺼리고 자기 일에 몰두하기로 했다.
같은 날 오후 진행된 부일영화상 시상식에 참석해 영화 '동주'로 최우수 감독상을 받은 이준익 감독도 전날 열린 부산영화제 개막식 레드카펫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두 감독 모두 21회 부산국제영화제 보이콧을 철회하지 않은 영화인 단체 중 하나인 한국영화감독조합 소속이다.
감독들은 영화제를 빛내는 전부는 아니지만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고 하지 않는가. 감독의 연출과 디렉션을 따르고 존경심을 내보이는 배우들도 많다. 감독들과 친분이 많은 배우도 연출자가 보이콧에 나선 영화제에 나서는 걸 꺼리고 있는 이유 중 하나로 읽힌다.
"Independent Film Festival for Busan"이라는 피켓으로 부산영화제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요구한 배우 김의성도 있었으나 많은 배우는 올해 영화제 불참으로 마음을 대신했다.
많은 수의 감독 및 배우, 영화인들의 부재 탓 21번째 생일을 맞이한 영화제는 활력이 없어 보인다. 사람으로 따지자면 팔팔한 젊음을 과시해야 할 나이인데 무기력해 보이기에 안쓰럽다.
세월호 다큐멘터리로 촉발된 일련의 일들이 영화인과 팬들을 아프게 하고 있는 탓이다. 분명 영화제에 관행적으로나 도의적으로 잘못된 부분도 있다는 걸 알린 건 서병수 부산 시장의 덕이라고 할 수 있으나, 방법이 잘못됐고 그 역시 잘못한 게 있으니 사과를 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직접적인 사과를 요구하는 영화인들 이야기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첫 민간 조직위원장으로 위촉돼 갈등을 일단락한 김동호 이사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전임 조직위원장의 사과라는 것이 물론 중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을 것"이라며 대신 사과했다. 부산 시장의 사과는 '절대' 없을 것이라는 다른 말로 읽히는 '대리' 사과였다.
시장의 자리에서 보자면 당연직인 조직위원장 자리도 민간에 내주는 등 이렇게까지 양보를 하고 영화제를 위해서 엄청난 희생을 했다고 생각할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판단이다.
대다수 영화인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정관 개정도 했으니 그 정도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물론 있으나 반 이상은 그걸로는 만족하지 않는다. 아울러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명예회복과 복귀를 요구하는 소리도 있다.
정치 논리로 따지기보다 영화를 사랑하는, 아시아 최고 영화제를 주최하는 부산의 시장으로도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하나를 내주면 하나를 얻어야 한다는 정치·경제 논리가 아니라 영화를 위한 희생정신이 필요한 때다.
영화인들은 내년에도 보이콧을 할지 모른다. 텅 빈 레드카펫, 줄어든 행사, 영화 팬들의 관심도 떨어진 영화제를 바라보는 마음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영화제가 우여곡절 끝에 열리긴 했으
지난 주말 영화의 전당 두레라움 광장에서 진행된 야외 무대인사에 사람이 이렇게 적은 건 처음이었다. 태풍 차바 탓 수해 복구에 시민들이 힘을 쓰고 있고 영화 팬들이 그들의 어려움에 동조하고자 영화제를 방문하지 않는 것으로 아무리 생각해도 올해 영화제는 있는 듯 없는 듯한 인상이 짙다.
jeigu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