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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 고요? 제 작품을 본 누군가가 ‘와! 멋있어요!’ ‘현경씨, 있어 보여요!’ 등 같은 말보단 ‘제 얘기 같아 너무 공감 됐어요’라고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관객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고 그래서 소통하고, 같이 늙어갈 수 있는, 친숙한 연기자로 평생을 살고 싶어요.”
아역 배우를 거쳐 어느덧 데뷔 22년, 충무로의 믿고 보는 몇 안 되는 30대 여배우 중 한 명이지만 정작 본인은 늘 부족하고 목이 마르다고 했다. 겸손이 몸에 밴, 고뇌가 일상인, 배우 류현경(34)을 만났다.
매 작품이 그러하지만, 그는 신작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에서 자신과 꼭 맡는 캐릭터로 이번에도 역시나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어느 날 눈을 뜨니 세상을 발칵 뒤집은 아티스트로 다시 태어난 지젤, 덴마크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10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무명화가인 그녀는 성공을 눈앞에 두고 돌연 심장이 멎는다. 현실의 벽 앞에 한껏 비틀어진 면이 있지만 결코 신념을 버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뚝심 있게 걸어온 인물이다.
그는 ‘지젤’에 대해 “부러우면서도 안쓰럽고 이해가 되면서도 답답하고 불쌍한, 나와 닮은 듯 닮지 않은 캐릭터였다”고 말했다.
“(지젤은)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싸우고, 원하는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스스로 고립이 되는, 순수한 영혼을 지닌 진짜 예술인이자 외롭고 고독한 여자에요. 저와는 분명 다른 사람이지만 왜 그녀가 그렇게까지 해야 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갔고, 그래서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하는 많은 분들에게 공감이 가도록 연기하고 싶었어요.”
작품의 메시지를 잘 전달하기 위해, ‘예술’이라는 국한된 소재를 보다 확산시켜 보편적 고민으로 만들기 위해, 관객과의 깊은 소통을 위해 치열한 연구의 과정을 거쳤다는 그녀였다. 대본은 늘 메모 반 일기 반, 그녀만의 고뇌들로 가득차 있었고, 실제 자신과 ‘지젤’과의 공통점을 찾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다고 했다. 때론 혼자, 때론 동료들과 함께 토론하며 캐릭터를 완성해갔다고.
“생각해보면 완전 다르지도 않아요. 저 역시 제가 하고 싶은 일, 연기를 하기 위해 수시로 현실과 마주해야 했죠. 모든 배우가 스타는 아니기에 일이 없으면 힘들어지는 게 당연하고, 그럴 땐 아르바이트도 마다하지 않고 임했어요. 배우로 데뷔한 후에도 계속됐죠. 부끄럽거나 가혹하게 느껴진 적은 없어요. 모든 건 다 과정이니까. 다만, 저는 현실과 부딪히든 스스로의 고민에 빠지던 늘 누군가와 함께 이야기하고 소통하면서 이를 헤쳐 나갔는데 ‘지젤’은 그런 면에서 너무 폐쇄적이죠. 그게 가슴이 아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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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이미 열정은 최고치에 달았는데 정작 일이 들어오지 않았다. 1년간 공백 아닌 공백기를 가져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스스로는 데뷔 10년차라고 생각해요. 그 때부터 연기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으니까요. 어린 나이에 데뷔했지만 이 일이 가진 화려한 면이나 인기, 위치와 같은 가치를 쫓진 않았어요. 그렇다고 연기에 대한 대단한 욕심이나 꿈도 없었죠. 그냥 재미있었어요. 다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현장에 가면 어른들이 예뻐해 주고 매번 새로운 경험들을 할 수 있단 게. 이젠 갈망이 커졌죠. 정작 일이 들어오지 않을 땐 마음고생을 크게 하긴 했지만, 가족과 동료, 선배님들에게 고민도 털어놓고 때론 투정도 부리면서 그 시기를 극복한 것 같아요.”
올해로 서른 넷. 적지 않은 나이지만 배우로서는 도전의 창구가 가장 열려 있는 나이기도 하다. 오랜 경력, 조금은 성숙해진 연령대에 대한 부담감은 없냐고 물으니 “점점 생기는 중이다. 좋은 연기자가 되고 싶다는 욕심과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바람, 내가 맡은 역할 만큼은 완벽하게 해내고 싶다는 목표가 더 뚜렷해졌다”고 답했다. “변신이나 인기, 보여 지는 것보다도 연기적으로 진실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오랜 경력에 비해 그 연령대에 더 잘 할 수 있는 역할들을 제대로 못 해 온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아요. 예를 들면 학창 시절에 하이틴 학원물 같은 걸 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이제는 제 나이 대에 맞는 자연스러운 역할들을 연기하며 늙어가고 싶어요.”
서른 넷, 그런데 딱히 이 나이에 어울리는 배역은 잘 모르겠다며 수줍게 웃는 그녀였다. 개인적으로는 인간적인 모든 가치가 사라진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한 공상과학 영화에서 몇 안 되는 남아있는 ‘사람’으로 출연하고 싶다고.
“앞으로 우리 사회가 기술적으론 많이 변화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그런 가치가 반영된 조금은 독특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언젠가 그런 기회가 올거라고 믿으면서 지금은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해야죠. 하하!”
차기작은 영화 ‘아버지의 전쟁’이다. ‘연기의 신’ 한석규와 호흡을 맞추게 된 그는 “요즘 신작 촬영에 한창이라 한석규 선배님을 만나고 있는데 정말이지 꿈만 같다”며 설렘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촬영 전 선배님은 내 나이 때 어떤 작품을 하셨을까 궁금해 찾아봤는데, ‘쉬리’를 하셨더군요.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웃음) 선배님은 제 나이 때에 정말 멋진 연기를 했다는 게 놀랍고 존경스럽고 또 부러웠죠. 이번 작품 역시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 뿐이에요.”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는 죽었던 사람이 다시 돌아온다는 독특한 설정을 바탕으로 예술가의 본질과 예술의 가치, 의미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과 풍자를 세련되게 담았다. ‘예술’만이 가지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과 그 가치에 대한 평가 기준이 상업적으로 거래되고 있는 시장의 논리를 거침없이 꼬집는다.
감독은 ‘트릭’과 ‘진실’, ‘타협’과 ‘신념’
kiki2022@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