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 기자]
베일을 벗은 ‘인랑’이 엇갈린 평가 속에서 ‘벌써’ 고전 중이다. 작품에 대한 호불호가 갈린 중심에는 주객이 전도된 ‘멜로’가 있다. 김지운 감독은 이 같은 시선에 전혀 예상치 못한 듯 “이럴 줄 알았다면 안 했을 것”이라며 “‘인랑’은 절대 로맨스가 아니다. 그렇게 봤다면 ‘오역’한 것”이라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극 중 인물인 임중경(강동원) 장진태(정우성) 한상우(김무열) 이윤희(한효주) 그리고 빨간 망토 소녀는 각각 특기대, 공안부, 섹트로 집단을 대표한다. 혼란한 시대일수록 개인보다 조직의 이념과 가치가 우선되고, 그것을 이용해 권력을 잡으려는 세력이 생기기 마련이다. 권력기관의 암투로 인한 내분을 다루지만, 사실은 이로 인해 희생된 개인과 묵살된 존엄성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그렇게 집단의 쇠뇌 속에서 잔혹한 행동을 저지르게 된 개인에 대해 과연 늑대의 탈을 쓴 인간인지, 인간의 탈을 쓴 늑대인지를 묻는다.
비주얼적인 어려움만큼이나 암울하고도 난해하고 고도의 철학적인 메시지를 지닌 원작을 어떻게 각색할 것인지 우려와 기대가 공존했던 터. 결과적으론 절반의 성공이었다. 실사화에 너무 공을 들인 탓일까, 비주얼적인 면에서는 대부분 호평이 쏟아졌지만 김 감독만의 해석을 덧붙이는 서사 면에서는 과도하게 안전하고 쉬운 길을 택한 듯하다. 복잡미묘한 원작의 난해한 오마주와 다소 진부하고 일차원적인 해석이 불협화음을 일으킨 것.
김 감독은 이윤희(한효주)는 임중경의 인간적인 면을 일깨우는 다양한 요소 중 하나(물론 중요한 역할이긴 하지만)일 뿐, 이것은 남녀의 로맨스로 봐서는 작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임중경은 배신한 친구, 아버지 같은 스승, 그리고 이윤희를 거치면서 서서히 깨우치고 자각하게 되며 작품 곳곳에 깔린 이를 위한 숨은 장치들이 굉장히 많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단지 이윤희와의 관계가 영화의 클라이맥스로 가기 때문에 로맨스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로맨스 자체가 문제라는 건 더더욱 아니다. 어떤 ‘이야기’냐, 감독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이 될 만한 ‘개연성’을 가지고 있느냐에 대한 의문이다.
임중경 외에도 각 집단의 상징이 된 존재들에 대한 서사와 관계가 보다 촘촘하고 입체적으로 그려졌다면 어땠을까. 하나의 완성된 작위적인 해피엔딩이 아닌 원작의 난해하고도 깊은 색체와 결을 같이 하면서도 보다 새로운 해석이 가미됐다면 좋았을 테지만 결국 ’남녀의 사랑’이라는 너무 쉬운 명제가 많은 걸 후퇴시킨다. 무엇보다 영화의 클라이막스가 두 남녀의 로맨스로 모아지면서 정체성은 점차 모호해 진다.
각자의 명분에 따라 이뤄진 만남이었지만, 알고 보면 사실 첫 눈에 서로에게 반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나, 긴장감 없이 수채화로 급변하는 둘의 분위기, 살기 위해 동료에도 등을 지고 가족의 죽음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던 이윤희가 몇 일 만에 보호 받아야 할 연약한 여성 캐릭터로 바뀌어 임중경에게 떠나자고 울부짓는 장면, 두 사람의 완결을 과도하게 친절하고 예쁘게 마무리 한 엔딩까지. 반전이 거듭될수록 오히려 몰입도가 떨어지고 임중경의 폭주에도 설득력이 떨어지는 건 이 같은 뜬금없는 전개와, 임중경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에 대한 불친절하고도 평면적 해석 때문이다.
미처 (우리가) 찾지 못한 감독의 숨겨진 장치들이 많이 있었겠지만, 그것을 모두 묻어버릴 강력한 ‘로맨스’, 그리고 그 강력한 로맨스의 허점을 더 선명하게 보여준 ‘허술한 개연성’에 지쳐버리게 된다.
단지 말로는 설명하기 부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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