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떠나보내고 나는 나의 생을 벌 받는 듯이 살았어. 그래야한다고 믿었었지. 이제야 다시금 깨달았어. 우린 잘못한 게 없었단 걸.”
어느 날 날아온 편지 한 통에 그저 무덤덤한 일상을 살아가던 윤희의 가슴은 뛰기 시작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감출 수밖에 없는 이들의, 그저 부끄러운 일이라 자책하며 깊은 상처를 묻고 사는 모두의 이야기, 김희애의 진면목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영화 ‘윤희에게’(감독 임대형)다.
윤희(김희애)에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아주 오래 전 헤어졌던, 지금은 일본에 살고 있는, 아픈 첫사랑으로부터다. 그리고 그녀의 딸 ‘새봄’은 엄마의 편지를 몰래 읽어 본뒤 편지의 내용을 숨긴 채 발신인이 살고 있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한다. 비밀스러웠던 기억을 품은 채 딸과 함께 여행을 떠난 윤희는 끝없이 눈이 내리는 그곳에서 첫사랑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는다.
윤희는 첫사랑을 찾아가며 자연스럽게 진정한 자신도 발견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사랑의 다양한 모양이 담기는 동시에 여성의 연대도 밀도 있게 그려진다. 국경이든 성별이든 선입견이든 그 무엇이든 사랑에 대한 잣대는 없으며, 세상에서 범주화된 것들을 유유히 뛰어넘어 결국 어떤 형태의 사랑이든 상관없다고 이야기한다.
나 자신은 누구이고 그런 내가 누구를 사랑하는 것에 대한 물음을 대면하면서 자신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누군가의 상처를 보다듬는다. 그 속에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이해, 응원이 따뜻하게 담겨 있다.
메가폰은 극강의 감수성과 섬세한 연출로 사려 깊게 이야기를 그려간다. 사랑의 상실과 복원, 두려움과 용기, 화해와 성장의 드라마까지 촘촘하게 녹여낸다. 사랑이라는 큰 테마 안에서 각자 자기 분량의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는 인물들이 서로를 보듬과 위로하면서 계속 살아가고자 하는 그런 이야기를 모녀의 여행을 통해 담은, ‘감성 멜로’의 진면목을 보여줄 완성도를 자랑한다.
멜로 드라마이기도 하고 성장드라마이자 여성 버디 무비이기도 하다. 각 챕터마다 다양한 장르가 녹아 있어 보는 재미가 솔솔하고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가슴에 남는 바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설렘과
다만 전체적인 호흡은 다소 느리고 분위기도 쳐진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지기 전까지 몸 풀기 시간이 꽤나 길다. 그럼에도 충분히 기다릴 만한 품격을 자랑한다. 오는 1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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