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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의 디바'라는 수식어로 익숙한 가수 이은미는 1989년 신촌블루스 3집 객원 가수로 참여해 부른 '그댄 바람에 안개를 날리고'를 통해 이름을 알린 뮤지션이다. 1992년 1집 '기억 속으로'와 2집 '어떤 그리움'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으며 이후 꾸준한 음악 행보를 이어온 그는 MBC 드라마 '내 생에 마지막 스캔들' OST 타이틀곡인 '애인 있어요'가 수록된 6집 앨범을 통해 국민가수로 발돋움했다.
8090 한국 가요계 르네상스 시대 대중 앞에 선 뒤 아름답고도 우직한 음악 행보를 이어온 이은미는 올해 데뷔 30주년을 맞아 또 한 번의 터닝 포인트를 맞는다. 6일 오후 서울 광화문 달개비에서 데뷔 30주년 기념 기자간담회를 열고 취재진 앞에 선 그는 어쩌면 앞으로 더 넓게 펼쳐질 자신의 음악 행보에 못내 겸손해하며 "기적 같은 일"이라면서도 못 말리는 음악 사랑을 드러냈다.
"세월이 차곡차곡 쌓여 30년이 됐다"고 운을 뗀 이은미는 "(지난 30년이)수월하지는 않았고, 한편으로는 기적 같은 순간들도 있었다. 그래서 진짜 열심히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드는 해다. 무게감도 많이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은미는 "이런 경험은 놀라운 경험이다. 이런 감정을 느낄 것이라는 건 생각지 못했기 때문에, 처음 느끼는 감정이다. 음악을 처음 시작할 때처럼 무척 설레고, 두렵다. 잘 해야겠다는 부담도 크고 무척 어렵고 힘들 때마다 고비마다 그 고비를 잘 넘길 수 있게 해준 많은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슴 드리고 싶고, 늘 묵묵히 지켜주는 팬들에게도 고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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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에게 감동 받은 포인트는 '아티스트' 이은미를 보이지 않게 아주 굳건히 믿고 응원해 온 팬들의 진심이었다. 이은미는 "저 혼자 수없이 많은 밤을 지새우며 만들었던 음악들, 대중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음악이 더 많겠으나 그런 음악들을 고민하고 애써가며 '누가 알아줄까' 하면서 만들었는데 많은 분들이 내가 고통스럽게 만든 작업물을 공감하고 계셨구나 싶었다. 기적 같고 놀라운 일이었다. 30주년 기념 공연을 하는 순간순간, 내가 이곳까지 온 것이 기적 같은 일이구나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순탄하지만은 않게 일궈온 30주년이었다고. 이은미는 "내 재능에 한계를 느낄 때마다 어렵고, 좌절하게 된다. 민낯이 드러나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들고, 부족함이 순간순간 느껴질 때마다 피하고 싶고 도망 가고 싶다. 자기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매번 직관하면서 산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고 말했다.
이은미는 30주년 기념 앨범 발표와 함께 전국투어 '30years, 1000th, 땡큐'에 돌입한 상태다. 광주, 부산을 시작으로 인천, 전주, 서울, 대구, 평택, 울산, 수원, 진주, 의정부 등 전국 35개 도시에서 2020년 말까지 팬들을 만날 예정이다.
이은미는 "20주년 기념 공연 때 진정한 딴따라가 됐다는 걸 느꼈다"면서 "투어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매 주 공연하러 다닐 수 있는 곳이 있다는 데 대한 기쁨, 새로운 분을 만난다는 데 대한 즐거움, 무대 위에서 살아 연주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나는 이제야 음악가가 됐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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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음악 인생 중 가장 의미 있는 곡으로는 어렵게 '애인 있어요'를 꼽았다. 이은미는 "매 순간 내 스스로 깊이 빠질 수 있는 곡을 만들려고 노력하지만,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곡이라면 '애인있어요'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미는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 내게 찾아왔고, 그 노래 덕분에 내가 다시 무대에 설 수 있게 됐기 때문"이라며 "그게 히트작이건 아니건간에 그 음악이 내게 굉장히 중요한 음악인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30년간 음악 외길을 걸어온 이은미를 음악에 빠지는 원동력은 역시 음악이라고. 이은미는 "음악을 어떻게 표현할 지 꿈꾸는 그 순간에, 내 머릿 속에서 흘러가고 있는 내 상상력 속의 음악이 다시 나를 움직이게 한다. 내가 원하는 소리는 이 소리인데- 하면서 다시 나를 움직이게 하고, 자극을 받았다가 다시 일어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토록 음악에 흠뻑 빠져있는 그가 데뷔 30주년을 기념해 내놓는 앨범 제목 역시 '흠뻑'이다. 앨범명에 대해 이은미는 "30년 동안 가장 내가 매혹 당한 일, 나처럼 이렇게 흠뻑 빠져 행복한 일을 하며 누렸던 사람이 있을까 (싶다). 그것이 음악이여서, 내가 음악을 바라보고 음악이 나를 바라봤을 때 서로 존중하며 나이 드는 것 같아 참 좋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초반에 음악을 접했을 때보다 지금 훨씬 더 음악에 솔직하고, 진실돼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표현들을 (타이틀에) 담아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80년대~90년대 초반까지 방송가의 통념이던 '립싱크' 시스템을 공개 저격하며 대중음악 시스템에 대한 '저항 뮤지션'으로도 활동한 이은미. 지난 30년 활동을 거치며 "분명 극명히 달라졌다"면서도 "그렇게 만족스럽지는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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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이슈 관련 소신 행보에 대한 생각도 담담하게 밝혔다. '두렵지 않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은미는 "두렵지 않은 게 아니다. 두렵다. 두렵지 않은 게 아니라, 두려운데 하는 것이다. 그건 정확히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미는 "거창하게 여러분께 받은 사랑 돌려드리고 싶다고 하고 싶지는 않고, 대한민국 국민이니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대한민국 국민임이 자랑스러운 나라였으면 좋겠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하는 것 뿐이다"고 말했다.
이은미는 "그걸로 칭찬하시는 분도 계시고, 욕하는 분도 계시다. 하지만 내가 음악을 하는 사람이고 대중에 노출된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고 그것을 하지 말란 법도 없는 것 같다"면서 "나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다하려는 것 뿐이며, 앞으로도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면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음악인으로서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이은미는 "패티김 선배님은 무대 아래서도, 심지어 잘 때도 오직 무대를 위한, 목소리를 위한 삶을 사셨다고 하더라. 그런데 나는 욕망이 가득한 사람이기 때문에 결코 그런 삶을 살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이은미는 "하지만 그것이 여러분들이 보시기에 내 얼굴에, 목소리에, 내가 서 있는 무대나 음악에 동떨어진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그것이 고스란히 내가 살고 있는 삶 자체가 내 목소리에 스미고 그래서 내 목소리에도 용기를 줘서, 그것이 온전히 여러분과 함께 있는, 사람임이 느껴졌으면 하고 바란다. 그것
이은미 데뷔 30주년 기념 앨범 '흠뻑'은 이은미의 지난 30년간의 음악적 깊이와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는 앨범. 지난 9월 온라인 선공개된 '사랑이었구나'와 '어제 낮'이 수록됐으며 순차적으로 신곡을 공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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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강영국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