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란 참 이상합니다.
공공의 질서와 사회 안정을 위해 지켜야 하지만, 그것이 꼭 그런 선의만으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는 생각도 듭니다.
모든 이데올로기가 그러하듯이 사실 법의 역사를 따져보면, 법이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조선시대 칠거지악은 남성 지배적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법이었고, 얼마전 폐지된 간통죄도 그러합니다.
악법도 법이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이 있지만, 가능하면 악법을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어제 우리 국회는 이런 고민을 충분히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제 국회는 이른바 김영란법을 압도적 찬성을 통과시켰습니다.
공직자와 언론인, 교사 들은 직무관련성이 없어도 법으로 정한 그 이상으로 금품을 받거나 향응 접대를 받으면 처벌하도록 한 겁니다.
부정부패 일소와 투명한 사회를 위해 김영란법 자체를 반대할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그 법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한번 따져봐야 한다는 겁니다.
국회의원 역시 자신들이 공직자에게 민원을 넣는 것은 예외 규정으로 뒀습니다.
애초에는 세금을 받는 공직자가 대상이었지만, 뚜렷한 이유없이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사가 포함됐습니다.
그러면서 언론과 마찬가지로 공적 기능이 강한 변호사와 의사, 시민단체, 은행 직원들은 모두 빠졌습니다.
배우자가 받으면 처벌받지만, 그 형이나 동생, 부모님이 받는 것은 처벌 대상이 아닙니다.
여러 논란이 있다보니, 하루 만에 보완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봇물을 이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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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MBN뉴스 |
▶ 인터뷰 : 유승민 / 새누리당 원내대표
- "입법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겸허한 자세로 모든 목소리를 듣고 입법에 보완이 필요하다면 하겠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이상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1년6개월 뒤 시행되기 전 위헌성이나 모호한 규정, 대상에 있어 시급히 수정 입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상민 의원과 어제 반대표를 던진 의원들의 얘기를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이상민 /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국회 법사위원장)
- "문제투성이이고 매우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도 많은 의원님들의 생각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 인터뷰 : 권성동 / 새누리당 의원
- "부인이 돈 받은 것을 알고 고발하지 않으면 형사처벌한다는 규정은 그야말로 과잉 금지죠."
▶ 인터뷰 : 김종훈 / 새누리당 의원
- "부정청탁을 하면 안 된다는 의미에서 국민의 기본권을 부당하게 제약하는 것이 따라온 것…."
이 법의 시행시기는 내년 총선이 끝난 뒤인 내년 10월쯤입니다.
19대 국회 임기가 끝난 뒤라 나 몰라라 한 걸까요?
부정부패와 투명사회가 이렇게 권력을 쥔 국회의원들의 대의명분이라면, 불법 정치자금의 통로로 이용되는 출판기념회와 후원회, 각종 경조사비까지 제한을 하는게 맞습니다.
남들이 로비하거나 접대 향응하는 것을 금지시킨 국회의원들이 정작 로비나 향응을 받아 법 통과를 지연시켰다는 의혹도 있습니다.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와 담뱃값 흡연 경고 그림이 빠진 게 대표적입니다.
CCTV 설치 법안과 관련해 투표에 참여한 171명 의원 가운데 찬성은 83표뿐, 42명이 반대, 또 46명이 기권표를 던져 법 통과를 위한 재적 과반수에 3표가 모자랐습니다.
김영란 법 처리 이후 많은 국회의원이 자리를 떴기 때문입니다.
▶ 인터뷰 : 유승민 / 새누리당 원내대표
- "원내대표로 많은 학부모들을 실망시켜 매우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책임감을 느낀다. 새누리당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의 압박도 작용했을지 모르지만..."
정말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의 압박이 있었던 걸까요?
지역구 의원들에게 해당 지역에는 있는 어린이집 원장이나 유치원 원장들이 선거 때 도와주지 않겠다고 했을까요?
그것에 겁을 먹은 걸까요?
어린이집에 보조 교사를 의무 배치하는 법안까지 부결됐으니 여야는 할말이 없게 됐습니다.
보육교사들의 사생활 침해 우려와 설치에만 600억 원이 드는 비용 문제는 그저 핑계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 인터뷰 : 서영교 / 새정치민주연합 원내 대변인
- "CCTV는 감시를 위한 것이 아니라 어린이집 원장들과 교사들이 먼저 제대로 된 어린이 보육을 위해 모든 것을 보여주고 오해받지 않겠다는 뜻이 반영된 것이다."
담뱃갑에 큼지막한 흡연 경고그림과 문구를 반드시 넣도록 한 법안도 2월 임시국회 처리가 좌절됐습니다.
담배회사들의 지속적인 로비에 국회의원들이 법안을 부결시켰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놓고 보니 정말 투명사회로 가는데 걸림돌이 되는 곳이 어디인지, 그런 사람들이 누구인지 되물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회 보편적 기준에 비춰 법을 만들기보다는 특정
김영란법이 우리 사회를 긍정적 방향을 바꿔놓을지, 아니면 누더기법으로 전락될 지는 두고 볼 일입니다.
만일 누더기법이 될 가능성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빨리 바로 잡는 것이 그 폐해를 막는 일입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