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야네단 마을회관에는 실력이 부쩍 는 아이들의 예술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
이 곳 남쪽 지역에 ‘야나기다니(柳谷)’라는 조그만 촌락이 있다.
‘야네단’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이 촌락의 세대수는 130가구. 전체 주민이라고 해봐야 300명이 채 안된다. 더구나 이곳 주민 절반 가량이 백발성성한 노인들이다. (올 1월 기준 65세 이상 인구비율 45.8%)
늙어가는 시골마을의 전형인 셈이다.
그런데 요즘 이 고령마을이 전국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그 이유가 흥미롭다. 이 마을이 도입한 ‘기발한’ 고령화 탈출법 때문이다.
이야기는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때까지만 해도 이곳 마을은 젊은이들의 이탈과 무기력한 노인들만으로 급격히 활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러다 마을의 생존이 위태롭다’고 느낀 촌장이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다른 지역에 사는 예술가들은 우리 마을 주민으로 모셔오겠다. 그래서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겠다”
눈이 휘둥그레진 노인들에게 도요시게 촌장이 한 설명은 이렇다.
‘마을이 활기를 띠려면 아이들과 젊은이들이 있어야 하는데, 좋은 예술가들이 아이들과 마을의 연결 끈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것. 또 아이들과 예술가와의 만남은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매력적이고, 그러면 부모들도 이곳을 쉽게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 도요시게 촌장은 ‘아티스트 유치전략’이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는 빈집을 되살리는 ‘묘안’도 된다고 노인 주민들을 설득했다.
촌장의 강력한 리더십으로 빈집이 ‘영빈관’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리모델링된 빈집에는 ‘영빈관 ○호’라는 푯말을 붙였다. 현재 영빈관은 8호까지 만들어져 있고, 6개실은 찼고 두 곳은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초빙할 예술가들은 전국 공모를 통해 뽑았다. 마을 자치회의 심층 면접 등 까다로운 선정 절차도 거쳤다.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초빙하기 위해 겹치는 분야가 없도록 했다. 현재 30대 젊은 아티스트부터 시작해 60대가 훌쩍 넘은 예술가 7명이 이곳에서 둥지를 트고 살고 있다.
자기만의 독특한 기풍을 고수하면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홋카이도 출신의 젊은 화가, 아이들에게 즐겁게 사진을 찍는 법을 가르쳐 줘 인기가 높은 젊은 사진작가, 기발한 디자인의 유리공예작가도 아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나가사키 출신 브론즈 조각가 나카오 아키라 씨(73)는 2008년 부인과 함께 이주해 살고 있다. 나카오 씨는 빈집의 소 외양간을 수리해 공방을 만들었고, 또 주민들이 예술을 함께 즐기고 대화할 수 있도록 카페나 갤러리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영빈관 사용료는 원칙적으로는 무료다. (*일부 수입이 있는 예술가 주민들에게는 1~2만엔 정도의 저렴한 대여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그 대신 예술가들은 아이들에게 자기분야의 예술을 가르쳐줄 의무가 주어져 있다.
도요시게 촌장의 파격적인 고령화 탈출법은 시행한지 얼마 안 있어 나름의 효과를 나타냈다. 매일 예술가들과 교류하는 아이들은 얼굴에 활기를 띄었고, 예술 실력도 부쩍 늘었다. 더불어 꿈도 커졌다. 마을회관에는 아이들의 예술작품들이 전시돼 있는데, 마을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다양한 표정이 담긴 사진과 회화는 수준급이다. 조형을 가르치는 한 예술가는 “자유롭게 나뒀더니 정말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아이들이 있어 놀랐다”고 말한다.
도요시게 촌장은 “작년에는 아이들이 자전거 일주를 떠나기도 했다. 꿈이 생기니 알아서 공부도 하고 다양한 도전도 마다하지 않게 됐다”고 흐뭇해했다.
고향으로 U턴을 하는 가족도 생겼다. 아이들의 활기찬 모습을 보는 노인들도 삶의 활기를 찾았다. 죽어가던 깡촌이 예술과 뜨겁게 만나면서 부활한 셈이다.
예술가 마을 야네단의 성공스토리가 매스컴을 타자 요즘 이 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부쩍 늘었다. 몇 년 전부터는 매해 ‘야네단 예술축제’가 이곳에
야네단의 성공스토리는 빠르게 늙어가는 한국의 시골 마을에도 적잖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고령마을 야네단의 기적을 한국에서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가노야시 야나기다니(일본 가고시마현) = 김웅철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