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년 전 딸들과 한 아빠의 약속이 마침내 이뤄졌다.
25일 제20차 이산가족 2진 상봉에 참여한 우리 측 최고령자 구상연(98) 씨는 ‘고추를 팔아 꽃신을 사주겠다’며 북에 남겨둔 두 딸에게 약속했던 선물을 이날 전달했다.
구 씨는 오전 우리측 가족들이 숙소로 사용하는 외금강호텔 객실에서 진행된 개별 상봉시간에 북녘의 두 딸 송옥(71)·선옥 씨(68)에게 고이고이 준비한 빨간 꽃신을 직접 신겼다.
그는 65년전 추석날 밤 ‘탄광으로 잠시 일하러 갔다온다’며 네 살과 일곱 살난 두 딸을 남겨놓고 고향인 황해도 장연군 집을 나섰다가 그길로 인민군에 입대하게 돼 가족들과 생이별했다.
그는 “월장 광산에 간다고 오후 4시까지 월장항에 집결하라고 했는데 그게 인민군 모집이었다”며 “4살짜리 둘째가 ‘아빠 또 와’‘하고 3번을 반복한 것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게 마지막이었다”고 말했다.
상봉에 동행한 우리 측 큰아들 구형서 씨(42)는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누나들에게 예쁜 신발과 옷감을 사주라고 얘기를 해서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전날인 24일 이산상봉 2진 첫날에는 지난 1972년 서해상에서 납북된 ‘오대양62호’ 선원이었던 정건목 씨(64) 가 남녘의 어머니 이복순 씨(88)와 43년 만에 만났다.
정 씨는 첫날 단체상봉이 진행된 금강산 호텔에서 휠체어에 앉아 상봉장으로 들어서는 이 씨를 보자마자 “엄마!”하고 외치며 달려들어 얼싸안고 굵은 눈물을 쏟아냈다.
어머니 이 씨도 스물 한 살에 거친 바다로 나가 헤어졌다가 환갑을 훌쩍 넘겨 금강산에 나타난 아들 건목 씨를 보고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건목 씨는 “아들 살아 있어…울지 마라, 근심걱정 없이 살고 있는데 어머니는 왜 자꾸 우나”며 구순을 바라보는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이날 납북선원 모자의 상봉은 사안의 특성상 민감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건목 씨의 북측 아내 박미옥 씨(58)는 남편이 어머니 옆자리에 앉으려하자 밀쳐내는 등 경직된 모습을 보였다.
미옥 씨는 남측의 동생들에게 “우리 당이 오빠를 조선노동당원 시켜주고 공장 혁신자도 되고 아무런 걱정할 것이 없다”며 “우리 남편이 남조선 출신이라고 차별하지 않는다.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또 다른 북측 가족들도 60년 넘게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우리 측 가족들에게 체제를 선전하거나 미국을 비판하는 등의 발언을 하며 어색한 분위기도 연출됐
한편 이산가족 2진 상봉단은 26일 오전 작별상봉을 끝으로 북측 가족들과 짧은 만남 뒤 기약없는 이별을 하게 된다. 지난 8·25남북합의로 성사됐던 제20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 역시 아쉬움 속에 이날 대단원의 막을 내릴 예정이다.
[금강산 공동취재단 / 서울 = 김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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