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대권주자들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내치·외치 구분없이 국정에서 완전히 손을 땔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권력을 내려놓을 뜻이 없는 박 대통령이 “국회에서 책임총리를 추천해달라”며 정국수습의 공을 야권에 넘기면서 야권 내 자중지란을 유도하고 있다는 게 이들 주자의 시각이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9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시민사회 인사들과 만나 “(국정에서) 내치와 외치를 구분할 수가 없다”며 “내각의 권한을 넘어서는 대통령의 고유권한, 즉 군통수권과 계엄권은 물론 국정원 감사원 사법부 헌법재판소에 대한 인사권 전반을 거국중립내각에 맡기고 대통령은 손을 떼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문 전 대표는 “내치와 외치를 구분하는 것은 제가 제안한 거국중립내각의 취지가 아니며, 민주당의 입장도 아니라고 알고 있다”며 “제 제안의 핵심은 대통령이 국정에서 손을 떼고 2선으로 물러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책임총리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도 이날 충북도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박 대통령이 애국심이 있다면 국민적 요구에 따라 겸허한 마음으로 (모든 권한을) 내려놔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내치와 외치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겠느냐”며 “내치든 외치든 국정의 모든 권한을 국무총리에게 넘겨서 과도정부의 수반으로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 박원순 시장은 한발 더 나아가 “책임총리보다 대통령 하야가 우선”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안 전 대표는 “14개월 남은 이 기간에 총리가 책임을 맡는다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오랜기간 나라를 이끌 수 있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가장 빨리 사태 수습하고 혼란 막는 길은 대통령이 물러나고 빨리 새로운 리더십 세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시장도 “국정 공백 상황에서 국민의 요구는 한마디로 대통령이 즉각 물러나라는 것”이라며 거들었다. 이들은 이날 올해 들어 첫 단독회동을 갖고 12일 촛불집회에 참석하기로 뜻을 모았다. 문 전 대표와 손 전 대표는 아직 참석 여부를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
여당 대권주자들도 비판의 날을 더욱 벼렸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이날 비상시국 토론회에서 “박 대통령이 아직 잘못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며 “해야 할 일을 아직 하지 않고 있고, 국민 앞에 모든 잘못을 밝히고 그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고 찔끔찔끔 부족한 대응을 하다 보니 국민의 분노가 더 커지고 이런 상황이 생긴다”고 말했다.
김 전 대표는 또 박 대통령과 결별 계기와 관련해 “나는 박 대통령에게 ‘당신과 나는 동지적 관계이지 상하 관계가 아니지 않냐’는 소리를 하다가 결국 그 사람과 멀어졌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다만 외치도 총리에게 넘기라는 야당 주장에 대해선 “헌법상 문제가 있다. 그런 점은 고려해 양보를 해줘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이날 한 강연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빨리 2선으로 물러나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압박했다. 남 지사는 “내치 책임자인 대통령이 법무부 지휘를 받는 검찰의 수사를 받는 것 자체가 국민의 신뢰를 받기 어렵다”며 이 같이 말했다.
[신헌철 기자 / 오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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