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암살 용의자로 추정되는 두 여성이 말레이시아 경찰에 체포됐지만 단순 가담자일 가능성이 속속 제기되면서 행적이 묘연한 남성 용의자 4명이 사건 규명의 마지막 열쇠가 되는 분위기다. 이들을 검거하지 못하면 자칫 사건이 미궁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다.
17일 영국 텔레그래프는 인도네시아 온라인매체 쿰푸란을 인용해 체포된 인도네시아 국적 여성 용의자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시내 나이트클럽에서 호스티스로 일해온 이혼녀이고, 김정남은 누구인지도 몰랐다고 보도했다.
'시티 아이샤(Siti Aishah)'라는 이름의 이 여성 용의자는 신원을 알 수 없는 한 남성으로부터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행동을 도와주면 100달러를 주겠다"는 제안을 승낙해 범행을 저질렀고 그 남성이 코미디 리얼리티 TV 쇼의 제작진이라고 생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성 용의자들은 경찰 조사에서도 김정남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거나 김정남 독살에 대해 "장난인줄 알았다"고 주장하는 등 사건의 배후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말레이시아의 중국어 신문인 '중국보' 인터넷판에 따르면 두 여성은 경찰 조사에서 "장난 동영상을 촬영하기 위해서 했다"며 "나는 액체를 남자의 얼굴에 뿌리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나중에 그가 사망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또 텔레그래프는 말레이시아 보안당국 소식통을 인용해 2명의 여성과 4명의 남성은 범행을 공모하기 이전에는 서로 알지 못했던 사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들 여성 2명이 남성들을 각각 3개월, 1개월 전부터 알게 됐고 여러 차례 연습하며 범행 방법을 익힌 것으로 알려진 점은 수상한 대목이다.
실제 용의자들은 김정남 암살 전날인 지난 12일 현장 주변을 답사하거나 마치 장난을 치듯 서로에게 스프레이를 뿌리는 모습들이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2청사 폐쇄회로TV(CCTV)에 찍힌 것으로 전해졌다.
현지 경찰 관계자는 "그들은 공항 출국장에서 (범행을 결행하기에) 적당한 장소를 물색 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여성들과 함께 있던 남성들이 이번 사건의 '두뇌'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말레이시아 경찰은 4명의 남성 용의자들을 체포하기 위해 국경 통제를 강화하는 등 추적에 힘을 쏟고 있다. 다만 남성 4명의 정체에 대해서는 현지 언론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현지 언론인 뉴스트레이츠타임스는 이들 중 대남·해외 공작업무를 총괄 지휘하는 북한 정찰총국 소속 40대 남성이 있다고 보도한 반면 현지 중국어 신문인 동방일보는 고위 소식통을 인용해 4명의 남성이 모두 특정 국가 정보기관 소속이 아니라 살인 청부를 받은 암살단일 것이라는 관측을 제기
[안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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