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북한에 대한 원유 수입 봉쇄, 노동자 고용 금지 등 고강도 대북제재법을 압도적으로 통과시키면서 문재인정부의 '대화-제재' 병행 방침에도 상당한 부담이 될 전망이다.
미국 상원은 27일(현지시간) 북한·러시아·이란 제재 패키지법안을 찬성 98표, 반대 2표로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전용되는 자금줄을 원천 차단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북한의 원유와 석유 수입을 봉쇄하고 북한 노동자 고용 금지, 북한과 유엔 대북제재를 거부하는 국가의 선박 운항금지, 북한 온라인 상거래 및 도박 사이트 차단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은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이 발의하고 지난 5월4일 하원을 통과한 것을 러시아·이란 제재법안과 묶어 지난 25일 하원에서 찬성 419표, 반대 3표로 재차 가결한 것이다.
이로써 새 대북제재법안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최종 서명만을 남겨놓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일 이내에 승인 또는 거부권 행사를 해야하며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을 경우 자동 시행된다. 새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백악관은 새 제재법안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날 미국 하원에서도 외교위가 북한여행통제법을 만장일치로 가결하고, 북한인권법을 2022년까지 5년 연장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북한여행통제법은 관광목적의 북한 방문을 전면 금지하고, 특별한 목적에 대해서는 재무부의 사전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불법 방북시에는 최고 10만 달러의 벌금을 물리도록 했다.
미국은 대북제재 효과를 높이기 위해 일본과의 공조도 강화하는 모양새다. 북한 기업 뿐만 아니라 중국 기업과 금융기관에 대한 제재에 적극적으로 나서달라는 미국 정부의 요청에 대해 일본 정부 역시 적극 협력한다는 방침이다.
일본 언론 등은 28일 "미국 정부가 독자 금융제재 대상으로 삼고 있는 중국 랴오닝성 단둥은행을 일본 정부의 제재 대상에도 포함시켜 줄 것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금융기관으로는 처음으로 지난 6월 미국의 제재대상에 포함된 단둥은행은 현재 일본의 2개 대형은행에 국제송금 계좌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는 또 대북 독자제재 일환으로 5개 단체와 9명의 개인을 자산동결 대상에 추가했다. 구체적인 대상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중에는 중국기업 2곳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새 대북제재법안의 핵심 내용인 북한 원유수입 봉쇄와 북한 노동자 고용 금지는 중국의 적극적인 협조없이는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다 지적도 나온다. 중국은 여전히 인도적인 차원에서 북한에 대한 원유공급과 북한 노동자 고용은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김정은 정권 수립 후 북한에서 소비되는 유류는 연간 약 150만t에 달하는데 이 중 절반 가까이를 중국이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노동자 고용과 북한과의 교역 역시 중국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우리 정부는 일단 제재와 대화의 병행 기조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 했다. 이유진 통일부 부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이 도발해도 대화 기조가 유지되느냐'는 질문에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는 강하게 압박과 제재를 하면서도 대화의 문을 열어놓겠다는 기존 구상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렉스 틸러슨 미 국무부 장관이 이날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의 전화통화에서 북한 도발 억제와 비핵화 견인을 위한 대북 압박 정책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져 우리 대북정책의 기조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가 이날 발표한 보도자료에서도 '대화'라는 표현은 자취를 감췄다. 지난 6월 한미 정상회담 후 지난 4일 통화에서 외교부는 양국 장관이 "제재와 대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한 북한 비핵화 방안에 공감했다"고 밝힌 반면, 이날은 '대화와 제재'가 아닌 '비핵화 방안들'이라는 모호한 표현이 자리를 차지했다.
한편 북한은 문재인정부 대북정책에 대한 비난을 이어가는 동시에 반미(反美)전선 확대에 나서는 분위기다.
북한의 선전매체인 '조선의오늘'은 이날 '시대의 요구와 촛불민심을 똑바로 보라' 제목의 글에서 문재인정부가 국정운영계획에서 밝힌 2020년 한반도 비핵화 달성, 북한인권문제 해결 등을 거론한 뒤, "(이 전략은) 이명박, 박근혜 패당이 내들었던 '비핵·개방·3000', '한반도신뢰프로세스'와 본질상 아무런 차이가 없다"며 "다른 것이 있다면 현 당국이 '화해, 협력'이라는 가면을 뒤집어쓰고 북남관계 문제를 그 누구의 '핵폐기'를 유도하기 위한 제물로 삼으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경제지도 구상'에 대해서는 "잡다한 것들을 내든 것은 현 남조선 당국이 치적쌓기, 인기몰이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비난했다.
김정은 노동당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 도쿄 = 정욱 특파원 / 서울 = 안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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