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와 같은 자리에 누워야겠다 싶어 (나는) 국립묘지에 안 가기로 했다."
2015년 김종필 전 국무총리 부인인 박영옥 여사가 세상을 떠났을 때 김 전 총리가 이완구 전 국무총리와 나눈 대화 중 일부다. 23일 별세한 김 전 총리는 파란만장한 정치 인생과 함께 보기 드문 애처가로도 유명했다.
김 전 총리와 박영옥 여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 소개로 만났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신의 형(고 박상희)의 딸인 박영옥 여사를 김 전 총리에게 소개시켜줬고, 당시 인연으로 박 전 대통령은 김 전 총리를 '임자'라는 호칭으로 불렀다고 한다.
김 전 총리를 지켜본 이들은 입을 모아 김 전 총리가 '애처가'였다고 말한다. 한 측근은 박 여사 투병 당시 "가족들은 박 여사 병세 때문에 김 전 총리가 워낙 상심해서 우울증에 걸릴까봐 더 걱정했다"며 "박 여사가 무슨 말을 해도 다 받아줄 정도"라고 밝힌 바 있다.
박 여사는 김 전 총리가 정치활동을 할 때 부인 외교, 사회봉사 등으로 내조를 맡았다. 김 전 총리가 공화당 탈당, 부정축재 혐의 등 위기에 몰렸을 때는 전면에 나서서 김 전 총리를 돕기도 했다.
김 전 총리 역시 박 여사를 누구보다도 아꼈다. 김 전 총리는 2008년 뇌졸중으로 오른쪽 팔·다리가 불편한 상태였음에도 박 여사가 입원한 이후 매일 휠체어를 탄 채 박 여사 곁을 지킨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구순 기념 만찬 때 김 전 총리는 오후 8시께 손님들을 돌려보낸 뒤 박 여사에게 줄 빵을 사서 병원을 찾기도 했다
김 전 총리가 창당한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소속으로 정계에 입문한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김 전 총리의 이같은 '순애보'를 전하기도 했다. 정 전 의원은 박 여사 투병 당시 페이스북을 통해 "최근 병문안을 갔는데 김 전 총리가 휠체어에 앉아 박 여사를 간병하고 있었다"며 "딸 예리씨가 '편하게 소파에 앉아 게시라', '댁에 들어가시라'고 해도 김 전 총리는 '네 어미가 날 위해서 평생 살다가 저렇게 누워있는데 내가 무슨 면목으로 편하게 앉아있을 수 있겠느냐'
김 전 총리 측 관계자는 23일 "장지는 부여 가족묘원으로 박영옥 여사가 묻혀있는 가족묘원에 같이 묻히신다"고 밝혔다. 생전 김 전 총리의 뜻대로 김 전 총리와 박 여사가 사후에도 인연을 이어갈 수 있게 된 셈이다.
[정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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