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쟁이에는 세 부류가 있다. 늘 참신한 글을 쓰는 부류, 그럭저럭 옳은 얘기를 참신하지는 않게 쓰는 부류, 유익하지 않은 글을 참신하지도 않게 쓰는 부류. 당연히 세번째 부류가 첫번째 보다 많다. 그러나 지금까지 본인 스스로 세번째 부류라고 생각하는 글쟁이를 본 적이 없다. 중요한 건 학습능력이다. 학습능력은 글을 잘쓰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는데도 필요하다. 세번째 부류는 학습능력이 떨어져 본인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무슨 상관인가. 늦가을 낙엽처럼 발에 차이는게 글쟁이인데. 학습능력 떨어지는 글쟁이는 믿고 거르면 된다. 물론 이 글도 심판의 대상이다. 패스~
세상에는 학습능력이 글쟁이보다는 뛰어나야 하는 직업들이 있다. 대통령도 그중 하나다. 대통령이 배우는 능력이 없으면 나라가 잘 안돌아간다. 그렇다고 글쟁이처럼 믿고 거를수도 없지 않은가. 미국의 대통령은 대체로 지적 능력이 탁월한 사람들로 채워진다. 머리좋은 대통령보다 머리나쁜 대통령을 골라내는게 훨씬 빠르다. 별로 없다. 최근 대통령만 보더라도 빌 클린턴이나 버락 오바마는 상위 1%에는 들어갈 수재들이었다. 조지 W 부시는 머리나쁘다는 조롱을 자주 받았는데 미국의 한 유명 경영대학원 교수는 부시의 업무를 꼼꼼히 분석한 뒤 "내 강의를 듣는 학생들 평균보다 아이큐가 높을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미국 대통령은 하루에 읽어야만 하는 보고서만 수백페이지, 그 중간중간 사람도 만나고 판단도 내려야 한다. 그 판단이라는게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것이다. 머리가 안 따라주면 지쳐버릴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좀 헷갈린다. 말이나 스타일로 보면 공부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데 세상을 자기 중심으로 끌고가는 재주는 거의 천재급이다. 그는 심지어 보고서도 읽지 않는다고 한다. 신문 대신 자기가 좋아하는 폭스뉴스만 본다. 저녁때는 친구들과 전화로 수다를 떨면서 정적들과 부하들 흉을 본다. 그래도 미국은 잘만 굴러간다. 트럼프는 평생 기업을 경영했던 인물이다.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을 알고 무엇은 몰라도 되는지 동물적인 직관이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걸 '일머리'라고 한다. 트럼프는 학습능력 보다는 일머리로 승부하는 유형이다.
며칠전 국민과의 대화를 보면서 '우리 대통령은 아는 것도 참 많다'는 생각을 했다. 평생 부동산 문제를 고민해볼 기회가 없었을 것 같은데 "집값은 반드시 잡겠다"고 한다. 나는 경제신문에서 오래 일해왔지만 집값을 잡는게 가능한지, 그리고 그것이 경제와 국민생활에 좋은 것인지 아직도 감이 안잡힌다. 일개 글쟁이와 대통령의 클라스 차이가 그렇다. 그런데 "이 정부들어 집값은 안정됐다"는 대목에서 좀 헷갈리기 시작한다. 현 정부들어 서울집값 상승률이 이전 두 정권에 비해 크게 높아진 것은 숫자가 증명한다. 분양가상한제 이후 강남 아파트는 억억하며 뛰고 있다. "집값이 뛴 것은 서울뿐이다"며 지방집값 안정을 치적처럼 얘기하는데 지방집값은 원래부터 오르는게 문제가 아니라 떨어지는 것이 문제였다.
대통령은 경제통계도 자주 언급한다. 그때마다 반론이 즉시로 튀어나온다. 틀렸거나 해석이 잘못됐다는 지적들이다. 문 대통령은 경제전공이 아니므로 그럴수도 있을 것같다. 대통령 머리에 잘못된 지식을 입력시킨 참모들 책임이 크다. 그렇다면 탈원전 문제는 어떨까. 대통령은 원전 전문가가 아니므로 역시 참모들 책임이 아니겠나. 지소미아 문제는? 대통령은 외교 전문가가 아니다. 국방 전문가도 아니다. 이 또한 참모들 책임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무엇이 전문이어야 하나. 용인(用人)과 위임의 전문가여야 한다. 가장 뛰어난 전문가를 발탁하는 눈과 그를 부리는 재주가 있어야 한다
[노원명 논설위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