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산의 부장들`에서 김재규 역을 맡은 배우 이병헌. [사진 제공 = 쇼박스] |
총살 직전까지도 김재규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충성을 다 바쳤던 것으로 전해진다. 영화와 동명의 원작 논픽션 '남산의 부장들'에는 이를 보여주는 다양한 일화가 실려 있다. 1978년 1월 김종필 의원이 가택수사를 당한 뒤 "내가 무슨 죄가 있느냐"고 항의하자 당시 중앙정보부장이던 김재규가 답한다. "각하, 초대 정보부장을 지내셔서 잘 아시지만 정보부장 직무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공산당 잡는 거고 다른 하나는 대통령 각하를 철두철미하게 모시는 것입니다. 만일 각하를 포함해서 누구라도 다른 생각을 가진다면 이 김재규가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 김충식 교수는 논픽션 작품을 한 번 더 쓸 수 있다면 김옥균에 대해 다뤄보고 싶다고 했다. `개혁은 왜 조롱당하나`라는 부제를 붙이고 싶다고. [한주형 기자] |
김재규를 포함해 총 10인의 정보부장을 다룬 기획이다. 연재는 그가 동아일보에 재직하던 1990년 시작됐다. 보통사람을 표방한 노태우 대통령 집권기였지만 여전히 시대는 엄혹했다. 한 번은 그가 기사에 첨부한 한 장의 사진으로 정부가 발칵 뒤집혔다. 1961년 반혁명죄로 연행되던 장도영 오른 편에 당시 대위이던 노태우가 함께 찍힌 것이다.
"이 앵글에 노태우가 등장하는 사진은 내가 처음 발굴했다. 왜 이 사진이 의미가 있느냐. 박정희는 쿠데타를 하면서 장도영을 앞세웠다. 그런데 쿠데타 성공 이후 그를 처단해서 자신의 권력을 세운 것이다. 그 과정에서 육사 8기와 5기가 싸웠는데, 노태우와 전두환이 주축이었던 11기는 5기 편을 든 것이다. 당시 원수 모독, 수사 기록 유출이라고 해서 난리가 났는데, '어차피 동아일보 1면 톱도 아니고 주말판 간지에 KCIA(중앙정보부) 스토리처럼 나간 거니깐 안 본 사람도 많다'고 해서 넘어간 것이다. 김충식 조져봤자 '다시 전두환 때로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나올까봐 걱정한 거지."
↑ 최근 서울시 중구 한 호텔에서 만난 김충식 교수가 `남산의 부장들` 개정 증보판을 들고 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주형 기자] |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사람 입장에선 기자를 만나는 게 백해무익하다. 도망 다니는 게 맞지 않겠냐. 5대 정보부장이었던 김계원 씨는 교회에 갔다가 동창회에 갔다가 지방에 갔다가 하면서 몇 달 동안 피해다니더라. 그분에 대해 써야 할 순번은 다가오고 있었다. 인터뷰 기법을 하나 말해주자면, 일요일 밤 10시 악천후면 못 만날 사람이 없다. 눈이 오는 일요일 밤 10시라면 반드시 집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찾아갔다. 문을 안 열어주는 사람에게 '내가 취직을 부탁하거나 돈을 빌리러 온 건 아니다'고 계속 말했다. 1시에 열어주더라.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쓸쓸히 있더라. 맥주 한 캔 마시면서 날이 샐 때까지 이야기하고 마음을 텄다."
2년 2개월의 연재 기간 동안 '남산의 부장들'은 최고 히트 코너가 됐다. 동아일보 연재물 최초로 고정광고도 유치했다. 1993년에 책으로 묶어서 냈는데, 한일 양국에서 도합 52만부가 나갔다. 그는 뉴 팩트에 대한 집착이 인기의 원동력이었다고 본다. "나로서 이 기획기사는 완전한 가욋일이었다. 1년 간 청와대 출입하는 동안에도 계속 썼다. 그렇다고 대충 쓸 수 있겠나. 어떤 기사든지 그 안에는 3~4개의 새로운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1995년께 복학한 우민호 감독은 이 책을 처음 읽고 손을 부르르 떨었다고 한다. 말론 브란도가 나오는 '대부' 같은 느와르 영화를 찍고 싶었다고 후에 김 교수에게 와서 털어놨다. 2015년 '내부자들'로 명성도 얻고 돈도 벌었으니 영화화해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흔쾌히 수락했다. 내가 쓴 역사책이 예술의 영역에서 어떻게 극화되는지 보고 싶었다."
↑ 오랫동안 정치, 사회 분야를 취재한 그는 정상에 올라 추락하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낀다고 한다. [한주형 기자] |
"차지철이나 김재규나 일인자의 인정을 받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김재규가 거느리던 정보부는 총원이 1만명 정도 되는 조직이었고. 그런데 그 수장을 한 주먹 거리도 안 되는 대위(차지철)가 밑에 두고 부리듯하며 면박을 주니깐 모멸감이 보통이 아니지. 그렇다고 단순 박정희 시해범은 아니다. 유신정국의 끝을 대규모 유혈 사태 없이 막을 방법에 대한 고민을 했던 건 맞는다. 당시 미국 쪽 기록을 보면 박정희를 제거해야 한다고 써놓은 게 많다. 김재규는 그런 사인을 계속 받았던 거지."
민주화가 된 지도 30년이 지난 지금, 왜 우리는 무고한 사람을 잡아 고문했던 중앙정보부의 권력다툼을 들여다 봐야 할까.
"인문학에서 문은 글월 문(文)이다. 한국어 '무늬'도 글월문에서 나온 거다. 사람이 발자국을 찍어서 무늬를 만든 게 인문학이란 말이다. 우리는 도덕과 윤리를 배우고, 성경과 불경이 있는데도 항상 남을 해치는 함정에 빠진다. 사람이 하는 일이 얼마나 어설픈지 끊임없이 연구해야 한다."
한 번 더 논픽션 작품을 쓸 기회가 온다면 김옥균에 대해 다뤄보고 싶다고 한다. '개혁은 왜 조롱당하나'라는 제목을 달고 싶다고.
논픽션 작가를 꿈꾸는 사람을 위한 조언도 곁들였다.
"가디언 주필 찰스 스콧이 그런 말을 했다. '논평은 자유지만, 팩트는 신성하다'고. 기자나 논픽션 작가나 다 마찬가지다. 남들이 상상했던 팩트가 아니라 당신의 호미를 가지고 직접 파낸 팩트가 무엇인지 확인해 봐라. 30년이 다 지난 이 책에 우민호가 감동해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이런 새로운 앵글에 의미를
[박창영 기자 / 사진 = 한주형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