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느낀다. 코트를 가만히 응시하다 보면 다시 뛰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간절하다. 내 표정이 보였는지 여기 코칭스태프도 종종 물어본다. “선수 생활이 그립냐”고. 망설임도 없이 “YES”라고 답한다. 그 오랜 시간을 농구와 함께 지냈는데 어떻게 잊을 수 있겠나. 나도 “당신들도 선수 생활이 그립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들도 한결 같이 “YES”라고 답한다. 나이가 마흔이든 쉰이든, 예순이든 상관없이 다 같은 답이 돌아온다. 나도 이런 마음을 평생 안고 가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지금은 다시 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공부다. 지도자 수업도 나에게는 또 다른 농구니까. 내가 코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좋은 코치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내가 농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선수로 뛰는 것만이 농구가 아니라고 뼈저리게 느낀다.
![]() |
그런데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훈련을 마친 뒤 이곳 스태프가 “다른 옷 있냐”고 물었다. 트레이닝복이 아닌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어야 한단다. 당연히 없었다. 나보고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오란다. ‘무슨 연습경기를 하는데 옷까지 갈아입고 오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느낌이 이상했다. 곧바로 인터넷을 검색했다 NBA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시범경기였다. 물론 나한테 설명을 했겠지만 내 짧은 영어로 이해를 못한 것이다.
드디어 시범경기 시간. 골든스테이트의 홈경기장인 오라클 아레나에 도착하고 깜짝 놀랐다. 시범경기인데 시즌과 다를 것이 없었다. 심지어 암표도 등장했다. 내가 갖고 있는 아이디카드는 꽤 유용했다. 주차도 VIP, 입장도 모두 패스, 패스였다. 그러나 내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은 선수 라커룸이었다. 경호원들에게 저지를 당했다. 곧바로 케이시 코치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나를 스카이박스로 안내했다. 영화에서나 보던 바로 그런 곳이었다. 프런트들도 모두 여기 모여있었다. NBA 관계자들도 1층에는 들어갈 수 없는 시스템이라는 것을 알았다. 경기장 관리 인원도 어마어마 했다. 내가 상상한 것 그 이상을 계속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시범경기인데….
드디어 경기가 시작됐다. 화려한 선수 소개. 이날은 새크라멘토 킹스와의 시범경기였다. 이런 기회가 또 어디있을까. 유심히 경기를 관전했다. 이미 골든스테이트의 연습 과정을 봐왔기 때문에 어떤 작전이 언제 사용되는지, 또 수비는 연습대로 잘되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난 어느새 ‘워리어스맨’이 되어 있었다. ‘우리’ 팀의 승리.
전반 기록지를 보니 의아했다. 엔트리가 12명이 아닌 15명. 부상자까지 포함해 17명이 엔트리에 올라있었고, 부상자는 부상 부위까지 상세히 표시가 돼 있었다. 그날 부상자를 제외한 모든 선수가 뛰었다. 그동안 몰랐던 시스템이었는데 정말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범경기에서 모든 선수를 테스트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셈인 것. 선수들은 시범경기에서 마지막 기회를 잡기 위해 동기부여가 확실히 되는 시스템이었다.
실제로 NBA 선수들이 훈련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들의 열정과 절박함이 보인다. 물론 그 중의 일부 스타들은 절박함은 아니지만 그들에게는 자기 위치를 지키려는 치열함이 보였다. 여기는 조금이라도 안주하거나 방심하면 언제든지 엔트리가 바뀐다. 또 전 세계에서 최고의 선수들이 몰려오기 때문에 누구도 안심 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그들이 뛰는 열정과 절박함을 보며 내가 뛰었던 선수 생활도 가끔씩 돌아 보게 된다. 그리고 반성과 함께 묘한 자부심도 생긴다. 나도 그들처럼 열정과 절박함이 있었을 때도 있었고, 가끔은 나태한 적도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나라 선수들도 기회가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도전을 한다면 NBA 선수가 나올 수 있다는 확신 같은 것이었다. 특히 가드 포지션에서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전해 보면 못 넘을 산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나라 선수가 NBA에서 뛰는 날을 그려보며 난 한국행 비행기에
10월20일 내가 그동안 뛰었던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은퇴식을 갖는다. 삼성 구단의 배려로 은퇴식을 갖게 됐다. 정말 감사하다. 지금은 어떤 느낌이 들지 모르겠다. 가족을 미국에 두고 홀로 한국서 맞는 은퇴식. 진한 감동이 있을 것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울지 말아야지.
[전 삼성 농구선수/현 산타크루즈 어시스턴트 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