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남들과 다르다고 판단하는 순간 자멸에 빠지게 된다.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느끼는 순간 두 눈은 멀고, 아집에 휩싸이게 된다.
고룡의 무협소설로 유명하며 1976년 영화로도 제작돼 대 히트를 친 ‘유성호접검’에서 용문방주 손옥백의 “적이 나를 무시하게 만들어야지, 내가 적을 무시하면 절대 살아남지 못한다”는 대사가 나온다.
↑ 초반 승승장구하던 김성근 감독의 야구가 위기를 맞고 있다. 투수로테이션은 무너지고, 불펜은 부상과 과부하로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사진=MK스포츠 DB |
곧 쓰러질 지경인 선수들은 아무 말도 못한다. 그 동안 ‘꼴찌’로 온갖 설움을 당해 온 선수들로선 “힘들다”는 말을 할 수 없다. “꼴찌 주제에~”라는 비난이 두려워서다.
김성근 감독은 이런 선수들을 향해 “패배주의에 물들었다”고 다그친다. 당장의 성적을 위해선 어떤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김성근 감독의 확실한 생각이다.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없으며, 그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참된 행복’이라고 믿는다.
프로야구는 팀당 144경기를 치르는 장기 레이스다. 육상으로 따지면 마라톤인 셈이다. 페이스 조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은 출발부터 100m 뛰듯이 달렸다. 선발 중간 마무리 투수를 한 경기 승리를 위해 마구 쏟아 부었다. 처음엔 버텼다. 제 아무리 우사인 볼트라 해도 1km를 100초에 주파할 수는 없다.
김성근 감독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감독은 선수가 없다는 소리를 하면 안 된다”고. 멋진 말이다. 김성근 감독은 자신이 한 말을 잊었는지 올 시즌 “선수가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불펜 혹사가 도마 위에 오르던 초반엔 “믿을 만한 선발투수가 없다”고 볼멘소리를 하더니 불펜이 무너진 후반기에 접어들자 “불펜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프로야구는 오랫동안의 시행착오를 거쳐 나름대로 정착된 원칙이 있다. 선발투수의 투구 수, 로테이션 간격 그리고 불펜투수의 투구 수와 연투 등이 특히 그렇다. 다른 팀 감독이라고 해서 승리를 위해 무리수 유혹에 빠지지 않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참고 길게 보려고 한다. 오늘이 아니면 내일, 아니면 내일 모레까지 본다.
지금의 전력이 다른 팀에 비해 떨어지면 이길 수 있는 전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선수들을 몰아세우고, 투수를 마구 투입해서 될 일이 아니다. 가능성 있는 선수들을 발굴하고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육성해 경쟁력 있는 팀을 만들어 내는 것이 지도자의 역할이다.
김성근 감독은 혹시 다른 팀 감독들과 자신은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남들에게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 있을 수도 있다. ‘야신’이란 굴레가 그를 옥죄고 있는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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