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통영 여행의 도화선이 도처에 널려있었던 것 같다. 사소하게도 시작은 충무김밥이었고 결과는 20여년 만에 탄 통영행 고속버스였다.
그 도화선에 불을 붙인 건 몇주 전 저녁약속을 급히 취소해야했던 '발등에 불시착륙한 불'이었다. 급작스레 마감해야하는 일이 들어왔고, 샌드위치나 편의점 도시락이 선택지로 떠올랐다. 정신도 없는데 한끼 정도 건너뛸까.
그 바쁜 걸음과 생각을 동시에 멈춰세운 것은 길가의 식당 간판이었다. 맞다, 저 밥집의 충무김밥 메뉴는 계산과 동시에 식사가 나오는 집이었지.
김밥 하나와 깍두기를 입안 가득 넣자마자 번뜩 떠오른 것은 연관검색어가 되어버린 봉준호 감독이다. 지난 5월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 감독이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면서 언급한 단어 중 하나가 바로 충무김밥이다. 이쯤되면 어쩔 수 없다. 급한 불만 끄면 바로 통영행 고속버스 검색부터 해야겠다. 그렇게 식당에 들어선지 10분만에 식사가 끝났고 마음은 이미 통영으로 먼저 떠나보냈다.
◆고속버스 표와 숙소만 정해놓고 홀연히 떠나도 좋은 통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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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피랑 벽화마을의 다양한 벽화들. 주기적으로 다른 작품의 벽화들로 바뀐다고 한다. [사진 이미연 기자] |
이번 여행 테마는 소박하게 '대중교통' 그리고 '무계획'이다. 통영으로 내려오는 동안 스마트폰으로 약간 찾아보니 통영의 시내관광 키워드로 충무김밥, 동피랑, 꿀빵, 미륵산, 케이블카, 루지, 거북선 등이 나왔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누구나 가보는 루트라면 초보 여행자에게 딱일테니까.
우선 터미널 앞 버스정류장에서 버스 하나를 잡아타 동피랑으로 향했다. 20년 전에는 아마 없었던 곳이라는 나름(?)의 확신을 굳히며 동피랑을 슬렁슬렁 걸어올라갔다.
바로 동피랑 입구의 입간판이 그 기억을 증명(?)해줬다. '동쪽 벼랑'이라는 뜻의 동피랑은 초대삼도수군통제사인 이순신 장군이 설치한 통제영 동포루가 있던 자리였다. 2007년 시민단체가 '동피랑 색칠하기-전국벽화 공모전'을 열어 낙후된 마을을 단장을 하기 시작했고 현재 통영의 대표 명소 중 한 곳이 됐다.
당연히 이 곳에서는 누구나 다양한 고퀄 벽화를 눈에 담으며 한참 동안 찍사(?)놀이에 몰입할 수 밖에 없다. 물론 동참했다.
그렇게 동피랑 한바퀴를 걸어서 구경 후 길을 살짝 돌려 내려오면 통영시 대표 어시장인 중앙시장이 바로 이어진다. 물론 벽화들이 시장 쪽으로 가는 길 내내 길안내를 해준다. 자판이 이렇게 죽 이어진 전통시장을 얼마만에 본걸까. 반갑기도 하고 가격을 흥정하는 무리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기분 좋게 싱싱한 회를 살 수 있어 성공적인데다가 착한 가격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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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피랑에서 중앙시장으로 내려오는 길에서 찍은 중앙시장 모습. [사진 이미연 기자] |
배도 부르니 산책 한번 더 할까. 중앙시장 쪽에서 10여분 정도 걸으면 서피랑 쪽으로 올라가는 골목을 만날 수 있다. 동피랑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산책로가 펼쳐지는 서피랑은 어쩐지 약간은 수줍어하는 듯하면서도 정갈한 통영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언덕이다. (그렇다. 언덕이라 땀이 좀 흐른다.)
◆도남관광단지에서 힐링 뷰만나고 싶다면…
서피랑 언덕 맨 위에서 남쪽으로 펼쳐진 통영 시내를 바라보면 전경 왼쪽 끝 저멀리 우뚝하게 자리잡은 스탠포드 호텔앤리조트 통영이 눈에 들어온다. 20여년 전에 왔던 통영에 왔을 때 묵었던 곳이 바로 옆 금호마리나리조트콘도여서 뭔가 감회가 새로웠다. 서피랑에서 버스로 30여분을 더 가야하지만 가는 길마저도 통영을 느낄 수 있는 일부라고 생각하면 버스 안에서도 이리저리 둘러보기 바쁠 것이다.
스탠포드 호텔앤리조트 통영과 금호마리나리조트가 들어선 곳은 통영 도남관광단지로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중심지인 미륵도 내의 해상관광단지다. 통영마리나에서는 모터보트, 세일요트, 수상스키, 제트스키, 파라세일링, 윈드서핑, 스킨스쿠버다이빙 등 다양한 해양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유람선을 타면 한산도, 거제해금강, 매물도 등을 오갈 수도 있다.
이번 숙소로 정한 스탠포드 호텔앤리조트 통영의 일부 객실은 바다 조망, 반대편 객실은 항구 조망이라 석양이 지는 남해의 표정을 다채롭게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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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탠포드 호텔앤리조트 통영 항구뷰 객실에서 만난 석양. [사진 이미연 기자] |
그때가 바로 통영의 여름이 깨어나는 타이밍이다. 하나 둘 반짝이는 네온싸인과 자잘한 조명들이 반딧불처럼 일어나 당신의 마음을 달래는 광경을 선물처럼 받을 차례다. 잠든 바다표면에 물감처럼 번지는 빛의 물감도 느낄 수 있다.
물론 바다뷰 객실도 괜찮다. 당신 마음의 고요를 바다에 비추는 시간을 만날테니까. 객실마다 독립적으로 마련된 발코니에서 바다의 음성과 숨결이 당신의 발걸음을 저절로 부르는 그 찰나를 놓치지 말자. 그 순간이 바로 산책을 나갈 타이밍이다.
건물 지하 1층과 연결된 '삼칭이해안길'에는 이미 초록 생명체와 선선한 바다바람을 친구삼아 산책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자전거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는데, 최근에는 킥보드를 타고 거니는 사람이 더 많은 편이다. 바다를 보면서 한적한 길을 즐길 수 있어서 프라이빗한 느낌도 든다. 물론 바다를 실컷 눈에 담아가며 슬렁슬렁 걷는 방법이 더 어울릴 수도 있겠다.
통영케이블카와 미륵산 정산, 통영
[디지털뉴스국 이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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