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89표. 축하합니다, 아빠.”
19일 저녁 7시12분(현지시간).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린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시 퀵큰론스 아레나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장남 트럼프 주니어가 뉴욕주를 대표해 대의원 투표결과를 발표했다. 알파벳 순서에 따라 주별로 결과를 발표하던 중 대의원 과반수를 뜻하는 매직넘버 1237표를 넘어서는 순간이었다. 대회장 전광판에는 불꽃과 함께 ‘오버 더 탑(정상 등극)’이라는 문구가 등장했고 트럼프의 고향인 뉴욕을 상징하는 ‘뉴욕 뉴욕’ 음악이 울러퍼졌다. 부동산 재벌 출신의 ‘아웃사이더’ 트럼프가 마침내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로 공식 선출된 것이다.
트럼프는 전당대회 현장에 생중계된 영상 메시지를 통해 “미국의 대통령 후보가 된 것이 자랑스럽다”며 “우리는 하나의 큰 진전을 이뤘다. 힘을 합쳐 앞으로 나아가자. 미국이 최우선이다”라고 후보 지명 소감을 밝혔다. 트럼프는 또 “마이크 펜스 인디애나 주지사가 러닝메이트라는 사실이 영광스럽다”며 “펜스는 위대한 부통령이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트럼프는 전당대회 마지막날인 21일 공식 후보수락 연설을 한다.
지난 해 6월 트럼프가 출마선언을 했을 때만 하더라도 그가 백악관으로 향하는 공화당의 대권 티켓을 거머쥐리라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지지율은 한 자릿수였고 유권자들은 트럼프를 대선후보라기보다는 괴짜 연예인으로 취급했다. 하지만 “멕시코 불법 이민자는 범죄자이고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겠다”는 막말과 허무맹랑한 공약을 내세우면서 오히려 지지율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테러가 발생하자 무슬림의 미국 입국을 금지하겠다는 ‘막가파’ 공약도 내놓았지만 트럼프는 공경선기간 내내 1위를 질주했다. 트럼프의 많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공화당 대선후보로 공식 지명된 것은 기성 정치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실망이 확대된데다 저소득 백인 노동자 계층이 트럼프의 고립주의적인 미국우선주위와 반무역기조에 맹목적인 지지를 보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후보로 등극했지만 앞으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와의 본선 대결에서 극복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장벽 건설, 무슬림 입국 금지, 속지주의 시민권 폐지, 자유무역협정 재검토, 동맹과 방위비 재협상 등 극단적인 공약에 당혹해하는 유권자들의 반감을 누그러뜨리는게 급선무다. 이들 중도층 지지를 끌어오지 못하면 힐러리를 넘어서기 힘들다는게 대체적인 진단이다.
트럼프의 막말은 히스패닉, 흑인, 무슬림 등 소수 민족과 인종 유권자들이 트럼프에게 등을 돌리는 상황을 초래했다. 트럼프 핵심 지지층인 백인 저소득 저학력 층의 지지만으로는 본선 승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공화당 주류의 인정을 받아 당을 통합해야 하는 과제도 남아 있다. 이번 전당대회에 불참한 조지 H.W. 부시, 조지 W. 부시 등 전직 대통령과 2012? 공화당 대선 후보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존 매케인 상원 의원 그리고 전당대회가 열린 오하이오에서 주지사를 맡고 있는 존 케이식 등과 화합하지 못하면 보수진영 지지를 온전하게 받기 힘들다.
뉴욕타임즈(NYT)가 이날 힐러리가 승리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은 것도 이같은 판단에 근거한다. NYT는 최근 실시한 주 단위, 전국 단위 여론조사 등을 토대로 주별 승리 가능성과 과거 주별 선거 결과 등을 종합분석한 결과 힐러리 승리 가능성이 76%에 달한다고 예측했다. 분석에 따르면 힐러리는 워싱턴DC를 포함해 347명의 대의원이 걸려 있는 28개 주에서 우세를 보였고, 트럼프는 191명의 대의원이 속한 23개 주에서 승리할 것으로 예상됐다. 중립 성향의 선거조사 온라인 매체인 ‘파이브써티에이트’도 힐러리 승리 가능성을 61.3%로 예상했고 프린스턴대학의 ‘프린스턴 선거 컨소시엄’은 통계적인 기법을 활용해 힐러리 승리 가능성을 65∼80%로 진단했다.
한편 트럼프 진영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들이 주목받고 있다. 트럼프가 힐러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국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들 역할에 따라 트럼프 진영의 한국 관련 정책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공화당 출신으로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 수퍼바이저를 맡고 있는 미셸 박 스틸은 이날 한국 기자들과 만나 “안보 무임승차론, 한미FTA로 미국 적자 확대 등 트럼프가 사실과 다른 주장을 펴는 것은 한국과 연결고리가 없기 때문”이라며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트럼프 정부에 한국을 제대로 알리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
[클리블랜드 = 이진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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