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내통 의혹 '물타기'를 위해 꺼내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오바마 도청' 주장이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미국 정가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여·야와 신·구 정권의 충돌과 함께 도청을 둘러싼 정보기관과 정치권의 진실공방이 벌어지는 양상이다.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5일(현지시간) "2016년 대선 직전 정치적 목적의 수사 가능성이 있었다는 의혹은 매우 걱정스러운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제기한 오바마 대통령의 도청 의혹을 의회 차원에서 조사해 줄 것을 요청했다. 공화당 소속의 데빈 누네스 하원 정보위원장은 "러시아의 미국 대선개입 조사 범위에 미국 정부의 대응도 포함돼 있다"며 수용 의사를 밝혔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진영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조시 어니스트 전 백악관 대변인은 방송에 출연해 "(러시아) 스캔들이 커지면 커질수록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거짓말도 점점 더 터무니없어진다"고 비난했다. 크리스 쿤 민주당 상원의원은 "자신의 잘못을 덮으려 화제를 바꾸는 트럼프 대통령의 시도가 가관이다"라고 했다.
한편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트럼프 대통령의 '도청 주장'이 거짓이라며 법무부에 실제 사실을 공표할 것을 요청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이날 보도했다. 현재 FBI 수장은 지난 대선 당시 힐러리 이메일 재수사를 공표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유리한 국면을 조성했던 제임스 코미 FBI국장이다.
제임스 클래퍼 전 국가정보국장(DNI)도 이날 인터뷰에서 "대선 때 그 어떠한 도청 행위도 이뤄진 적이 없다"고 일축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내통 의혹을 희석시키기 위해 '오바마 도청'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알려졌으나 러시아 내통 의혹은 더욱 짙어지는 분위기다. 도청 논란으로 인해 러시아 내통 의혹에 대한 관심이 더욱 확산됐기 때문이다. 또 도청이 사실이라면 러시아 내통과 관련한 중요한 단서가 존재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므로 결과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도청 주장이 러시아 대선 개입 논쟁과 관련해 더 정밀한 조사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극우 인터넷매체인 브레이트바트의 보도를 근거로 도청 주장을 했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됐다. 현재까지는 이 보도의 신빙성이 높지 않은 것으로 평가됐다. 트럼프 대통령과 브레이트바트는 오바마 도청과 관련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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