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시바가 생존을 위해 알짜사업 반도체까지 매물로 내놨지만 날개없는 추락을 막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몰락의 단초를 제공한 미국 원자력발전사업에서 날이 갈수록 천문학적인 추가손실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9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도시바의 미국 원전자회사인 웨스팅하우스(WH)가 건설중인 원자력발전소 4기 건설 과정에서 수천억엔(수조원)의 추가 손실 가능성이 제기됐다.
지난달 7000억엔(7조원)이 넘는 원전사업 손실을 실토한 후 낸드 플래시 세계시장 점유율 2위인 반도체사업 매각이라는 초강수를 들고 나왔지만 원전 악몽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할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문제가 되고 있는 원전은 지난 2008년 수주한 미국 조지아주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원전 4기다.본격적인 원전 건설이 2013년 시작됐지만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진척도는 30%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사히는 "공사기간을 2020년 12월까지 연장시켰지만 더 늦어지면 다시 엄청난 손실이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원전 4기를 2020년까지 완공하지 못하면 도시바가 추가 공사비용을 짊어져야 하는 데다 공사를 발주한 전력회사가 미국 정부에서 세제상 우대를 받지 못하게 돼 도시바에 보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도시바가 지게 될 추가 손실은 최대 수천억엔 규모에 이르게 될 가능성이 있다.
도시바의 원전 잔혹사는 지난 2006년 사업다각화의 일환으로 미국 웨스팅하우스를 인수하면서 시작됐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54억달러라는 거금을 들여 인수에 성공한 도시바의 축배는 불과 10여년 만에 독배로 바뀌었다. 인수 직후 원전을 수주하며 잘 나가는 듯했지만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라는 블랙스완이 터지면서 악몽은 시작됐다. 원전 올스톱으로 일본 시장이 사라지고, 규제마저 강화되면서 원전 사업은 골칫덩어리로 전락했다.
하지만 80년 역사의 도시바를 한순간에 몰락시킨 것은 이런 외부요인보다 내부 요인이 더 크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경영진이 불가능할 만큼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을 강요하는 상명하복 조직과 꽉막힌 커뮤니케이션 불통 문화가 문제가 드러난 이후에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잠재부실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2015년 부정회계가 발각되기 전까지 도시바는 일본의 자존심이라 불릴 만큼 존경받는 기업 중 하나였고, 시장에서는 잠재부실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지난달 7000억엔이 넘는 원전 손실도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튀어나왔다. 도시바가 반도체사업을 매각할 경우 최대 25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수혈할 수 있지만 천문학적인 원전사업 부실이 계속 드러나면서 결국 엘리베이터 전문회사로 전락할 것이라는 비관론까지 나오고 있다.
도시바에게 원전은 악몽이 되고 있지만 글로벌 전자회사들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미 도시바 구조조정 와중에 백색가전은 중국의 메이디가, 영상센서 반도체는 소니가, 의료기기는 캐논이 사들이며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로 삼았다. 마지막 남은 알짜 반도체사업에는 전세계 IT기업 10여곳이 군침을 흘리며 이합집산을
특히 계속되는 추가손실 가능성으로 인해 도시바기 알짜 반도체 사업 매각을 서두르고 있어 매수후보들의 발걸음은 더 빨라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날 애플 아이폰 위탁생산업체 폭스콘의 모회사인 대만의 훙하이가 SK에 공동 출자를 제안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도쿄 = 황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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