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구조 감시하는 검사역 신설…은행권 "우리만 부담 떠안아"

■ 금감원 금융감독혁신안 발표

↑ 윤석헌 원장이 9일 오전 여의도 금감원에서 금융감독혁신 과제를 발표하고 있다. [한주형 기자]

금융회사들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장악력'이 강화될 전망이다. 금감원이 9일 발표한 '금융감독혁신 과제'는 총 5대 부문, 17개 핵심 과제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투명하고 공정한 금융시장 질서 확립'을 위해 시행될 예정인 핵심 과제 대부분은 금융회사 경영과 관련해 감독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경영 투명성 강화를 위해 금감원은 올해 4분기부터 금융지주의 지배구조 실태평가 수준을 높이고 사외이사 후보군의 다양성도 점검할 방침이다. 금융사의 지배구조·내부 통제를 전담하는 전문검사역 제도를 신설하고 근로자추천이사제 관련 공시도 강화한다. 금융사 최고경영자(CEO) 선임 절차와 경영승계 계획 등도 집중적으로 점검해 이른바 '셀프 연임'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대형 금융사 갑질 행위를 집중적으로 점검하고 대주주·계열사 간 부당 내부거래와 일감 몰아주기 등 불공정 행위를 적발하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와 공조·협력 체계를 구축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경영진에 대한 감독당국 검사는 금융사들이 가장 부담스러워한다"며 "이날 발표한 감독 강화 내용이 당국에 밉보인 금융사들을 길들이는 용도로 사용되지 않도록 해야 제도가 원활히 정착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영업자·서민 금융지원 강화'를 위한 핵심 과제에도 금융사들이 부담스러워할 내용들이 가득 담겼다. 금감원은 은행권 취약차주 부담 완화 방안으로 사회 취약계층 신용대출 원금 감면 대상을 특수채권에서 일반채권으로 확대하고 실업·질병으로 채무 상환이 어려운 차주는 은행에 채무조정 요청을 할 수 있도록 대출약관에 조항을 신설할 계획이다. 일시적 유동성 위험에 처한 차주의 기한 이익 상실 시점을 현행 1개월에서 3개월로 늦추는 방안도 구상 중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결국 부담은 은행이 떠안고 생색은 정부가 내는 셈이지만 금감원이 지시하면 따르지 않을 방법이 없다"고 푸념했다.
금감원이 '금융소비자 권익 보호 강화' 차원에서 실시하기로 한 혁신과제들에 대해 금융사들은 "필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자율성을 지나치게 해치지 않도록 신중하게 실행해달라"고 당부했다.

금감원은 먼저 대출금리 산정 체계를 합리화하기 위해 대출금리 부당 부과 조사를 모든 은행에 대해 확대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소비자 피해가 금융사의 단순한 과실에 의한 것이라도 이와 관련해 충분한 배상을 했는지 제재 수위를 정할 때 반영하도록 한다. 또 부당한 금리 산정 행위가 발견되면 경영진을 제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경영진에 책임도 묻기로 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혁신과제 대부분이 감독 강화와 관련이 있는 건 최근 일어난 일련의 금융 사고들로 인해 금융사들을 강력히 규제해야 한다는 국민 여론이 높아진 것과 연관이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몇 년간 금융사 자율을 존중하는 방안으로 감독 정책이 추진됐지만 이를 기회로 금융사 이익만 챙기려는 움직임이 하나둘씩 나타났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한편 이날 발표한 금융감독혁신 과제에는 개인 간 거래(P2P) 시장, 암보험 등 금융 관련 이슈와 직접 관련 있는 내용도 많이 포함됐다. 최근 부실 위험이 높아지고 있는 P2P 대출시장에 대해서는 투자 한도 제한과 투자금을 별도로 관리하도록 바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P2P 대출과 연계된 대부업 178개사를 전수조사할 계획이다. 최근 분쟁이 잦은 암 환자의 요양병원 입원 시 보험금 지급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금감원은 먼저 요양병원 입원 시에도 보험사가 암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자율 조정을 추진하고, 앞으로는 암 직접 치료와 관계가 없더라도 요양병원 입원 시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개선한다는 방침이다.
[김동은 기자 / 이승윤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