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첫번째 직업은 청계천 넝마주이였다. 중학교 졸업 직후였다. 쓸 만한걸 주워오면 동네 형들에게 빵 얻어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충무로 인쇄소에서 스티커 떼는 일을 하다가 에니메이터를 거쳐 중국집에서 철가방을 들었다. 일이 익숙해질만 할 때 박차고 뛰어나와 새로운 도전을 했다. 충무로 골목을 누비며 인쇄 산업의 감각을 익힌 그는 광고업에 뛰어들어 탄탄대로를 달렸다. 지금은 직원 50여명을 거느린 중견 광고업체 핸즈BTL 사장이다. 그의 최종 직업은 예술 영역의 어디쯤이 될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흔하지 않은 사연의 주인공 박동훈 대표(52)를 서울 중구 필동 본사에서 만났다. 그는 “세상을 살면서 배워야 할 지식과 경험 모두를 이곳 필동 골목에서 배웠다”며 “이곳은 내 터전이자 공부방”이라고 말했다. 바닥부터 구르며 치열하게 세상을 살아낸 그의 최종학력은 미술고 2년 중퇴가 전부다.
‘인생의 터전’ 필동을 바꿔봐야겠다는 생각이 든건 회사를 필동 24번지로 옮긴 2012년 직후부터였다. “충무로 필동 바닥에서 이만큼 성공했는데 나 혼자 이걸 다 누려도 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때 마침 회사 근처 쇠락한 좁은 골목길이 눈에 들어왔다. 비가 새 쓰러져 가는 건물, 낡은 육교 밑 쓰레기 집하장으로 추락한 공터가 눈에 밟힌 것이다.
“필동, 충무로에서 먹고 살 기반을 마련했는데 내가 동네에 기여한 건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필동에 대해 공부해보니 이곳은 조선시대 교육기관 남학당, 기생양성소였던 권번이 있던 문화의 동네였어요. 여기 흐르던 예술적 피를 되살려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밤이 되면 귀신이 나올 것 같던 필동 뒷골목을 손봐 ‘사변삼각’, ‘둥지’를 비롯한 스트리트뮤지엄 8곳을 세웠다. 본사 1층은 세련된 레스토랑 ‘24번가’로 변신했다. 식당 맞은 편에는 영국에서 수입한 ‘극장식 의자’를 들여온 ‘코쿤뮤직’ 공연장이 곧 오픈한다. 그의 머릿속 상상이 하나씩 현실로 옮겨지면서 이 일대는 세상 어디에 내놔도 꿀리지 않은 문화 골목으로 탈바꿈했다.
“저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어요. 만약 공부를 좀 더 했었더라면, 좋은 경험에 많이 노출됐더라면 지금 내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가끔 생각합니다. 지금 내 삶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아쉬움이 좀 남긴 하지요.”
그는 “동네 골목을 지나가던 꼬마 아이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유명 작가의 예술품을 감상하는 세상을 꿈꾼다”며 “그 짧은 경험이 아이에게 얼마나 엄청난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면 흐뭇하다”고 말했다. 그의 어린 시절의 결핍을 후세에 물려줄 수 없다는 사명감이 꿈틀댄 것이다.
그가 19일부터 필동 24번가 삼거리골목 일대에서 열리는 ‘필동 골목축제 예술통’을 기획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골목 곳곳에 미술, 음악, 문학과 F&B(식품·음료)가 어우러진 하모니가 펼쳐진다. 박 대표 열정에 감복한 예술가 수십명이 팔을 걷으며 돕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주민과 예술가, 기획자와 공공기관이 힘을 합쳐 도시재생 패러다임을
“음식과 미술, 음악과 조형물이 어떻게 어우러지는지를 제대로 보여줄 생각입니다. ‘예술통’이라는 행사 이름도 ‘예술을 통에 담다. 예술이 통하다. 예와 술이 통하다’라는 의미를 담았지요. 필동을 문화와 예술이 숨쉬는 공간으로 조명하고 싶어요.”
[홍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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