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하지만 시사회 등을 통해 대중을 만나고 나서는 조금은 또 안심이 된 듯하다. 호흡기로 감염되며 감염속도 초당 3.4명, 시간당 2000명 발생, 발병 후 36시간 내 사망하는 유례없는 사상자를 낸 치명적인 바이러스 H5N1이 발생하면서 벌어지는 사람들의 사투를 담은 ‘감기’는 유료시사회를 통해서 13만여 명을 동원했다. 14일 개봉에 앞서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김 감독은 “영화는 자기가 부여받은 운명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손을 떠나 세상으로 나가는 영화에 대해 “폭풍이 몰아치는 센 영화 (쌍끌이 흥행 중인 ‘설국열차’와 ‘더 테러 라이브’) 사이로 가는 것”이라는 표현을 했지만, 심각하게 걱정할 정도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최근 재난 영화는 괜찮은 흥행을 했다. 비슷하게 보이지만 전혀 내용이 다른 ‘연가시’가 그랬고, 지난해 말에도 ‘타워’가 흥행했다. 변종 감기 바이러스를 소재로 했으니 ‘연가시’보다 체감 온도가 높고, 현재 MBC ‘일밤-진짜사나이’로 대중과 가까워진 장혁이 있어 ‘타워’보다도 친근하게 다가온다.
구조대원으로 변신한 장혁뿐 아니라 감염내과 전문의 수애와 그의 딸로 나오는 박민하의 연기도 눈에 띈다. 수애의 모성애 가득한 모습과 영화의 중심이 되는 박민하는 무거운 짐을 진 듯하지만 자신의 역할을 200% 소화했다.
김 감독은 어린 박민하에게 무거운 짐을 지운 것 같은데 잘 소화했다고 하자 “박민하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다행”이라고 좋아했다. 사실 어린 딸 ‘미르’ 역할 오디션만 4개월 동안 진행됐다. 지금 TV에 나오는 아역 중 김 감독이 보지 않았던 아이들이 없을 정도다. 몇백대 일을 뚫고 미르가 된 박민하의 연기는 나무랄 데 없다.
![]() |
“사실 수애씨가 그렇게 친화력이 있는 배우는 아니거든요. 아이와 수애씨 스킨십이 자연스럽게 일어나야 했는데 자꾸 붙여놓으니 어느 순간부터 밀착이 되더라고요. 정말 예뻐서 예쁘다고 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완벽하게 소화했어요.”
대통령으로 나오는 차인표는 주위에서 만류했지만 김 감독이 강행한 캐스팅이고, 또 다른 구조대원 유해진은 ‘무사’(2001)의 인연으로 함께하게 됐다. 악역으로 나오는 마동석이나 이희준 등은 영화 ‘비트’(1997)의 강렬한 기억 때문에 김 감독과의 작업을 바랐던 배우들이다. 공식석상에서 “정말 영광”이라는 표현까지 했다.
마동석이나 이희준이 언급한 것처럼,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비트’는 김성수라는 이름 앞에 수식어처럼 붙는 영화다. 마동석이나 이희준처럼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보고 감탄했다. 김 감독에게 ‘비트’는 어떤 의미인지도 궁금했다.
“‘비트’가 있으니 제가 있는 거겠죠.(웃음)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원동력인 동시에 좋은 기억이에요. 하지만 추억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전 분명히 다른 위치에 서 있거든요.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고 돌아갈 수도 없고요. 다만 그때 영화를 만들던 열정이나 용감함 같은 것들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은 해요. 이번 ‘감기’도 솔직히 용감하게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버짓도 큰 영화고 다양한 관객을 겨냥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죠. 다음에는 예산을 줄여서라도 꼭 용감한 영화를 찍고 싶어요.”
![]() |
김 감독은 자신의 위치가 위태로워졌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자부심도 강했다. “긍정하긴 싫은데 우리 세대가 저물어가는 것 같아요. 그래도 자부심이라고 한다면 과거에 한국영화를 안 봤는데 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한국 젊은 관객들이 우리나라 영화를 보게 했다는 것이죠.”
김 감독은 이번 감기에 대해서도 자부심이 크다. 깊게 생각해 만들어냈다. ‘감기’가 관객을 찾는데 오래 걸린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너무 많은 것을 소화도 못 하면서 구겨 넣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당연히 이렇게 만들어야만 했다고 생각한다”며 “다시 또 만들게 된다고 해도 이렇게 만들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재난영화는 인간적인 이야기나 감동적인 것을 보러 간다고 하면서도 극을 보는 시각적인 쾌감이 있잖아요. 하지만 ‘감기’에서 시각적인 쾌감이 맞는가를 생각해 봤어요. 그래서 경기장 매립지 한 신을 빼고는 나머지는 핸드헬드 카메라를 이용해 인물을 쫓아가며 진짜처럼 만들어놓자고 했죠. 우리 영화의 인장 같은 매립장 신도 볼거리로 찍어 놓긴 했지만, 보면서 도살처분이 돼지에게만 쓰이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악몽을 관객이 느꼈으면 하기도 했어요. 또 재난이라는 상황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할 수밖에 없잖아요? 종합선물세트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입맛에 맞게 영화를 봐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연출했죠.”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사진 팽현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