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데뷔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빨리 연기 대선배님들과 호흡을 맞출 줄은 몰랐어요. 이게 참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영광스럽고 감회가 남다르네요.”
데뷔 한 지 일 년 남짓한, 시쳇말로 새파랗게 어린 신인배우 여회현의 첫 인상은 ‘당차다’였다. 자신의 생각을 전함에 있어 주저함이 없으며,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아는 영리함에, 숨기지 않은 솔직함까지 갖추고 있다.
tvN 금토드라마 ‘기억’에서 이승호를 연기한 여회현은 대중에게 있어 ‘낯선 얼굴’에 가까웠다. 그도 그럴 것이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대표작으로 꼽을만한 작품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덕선(혜리 분)이의 소개팅남 역으로 잠깐 출연하면서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여회현은 자신에게 찾아온 ‘기억’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이를 통해 ‘낯선 얼굴’에서 ‘두고 볼만한 새싹’으로 눈도장을 찍는데 성공했다.
↑ 사진=이현지 기자 |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어요. ‘기억’에서 제가 연기한 이승호는 저와 너무 달랐거든요. 성격부터 시작해 나이, 자라온 배경 뿐 아니라 일반 사람들이 쉽게 경험하지 못할 뺑소니 사건까지 겪으며 15년간 죄책감을 지고 살아온 승호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막막했고, 고민도 많이 했죠. 처음에는 주변에 조언도 구하고, 제 스스로가 익숙해지지가 않아서 그런지 어색하고 어설픈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촬영을 하면서 적응이 됐는지 6회차 때부터 자연스럽게 됐던 것 같아요. 뭐랄까, 물 흐르듯이 조금씩 풀려나간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물론 승호라는 캐릭터가 너무나 복잡하고 어려워서, 그 인물을 100% 다 풀지 못했고, 이에 따른 아쉬움도 있지만 말이죠.”
극중 이승호는 태선로펌의 대표 이찬무(전노민 분)의 아들이자, 로스쿨 재학 중인 인물이다. 박태석(이성민 분)과 나은선(박진희 분)의 아들 동우의 뺑소니 사건의 진범이기도 한 이승호를 연기한 여회현은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특성상 또래의 배우들보다 전노민, 이성민, 박진희와 같은 선배들과 연기호흡을 맞추는 경우가 더 많았다.
“처음 선배들과 연기를 한다고 들었을 때 정말 많이 긴장했어요. 제가 어렸을 때 드라마 ‘선덕여왕’을 정말 재밌게 봤었는데, 그때 전노민 선배님을 보고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랬던 대 선배와 아버지와 아들로 호흡을 맞췄다는 것이 감격스러웠고, 이성민 선배님은 다들 아시잖아요. ‘미생’ 한창 배우의 꿈을 꿀 때 ‘미생’을 보면서 ‘나는 언제쯤 저런 선배들과 연기 호흡을 맞출 수 있을까’라고 생각만 했는데, ‘기억’에서 만나게 됐잖아요. 이게 참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영광스럽고 감회가 남다르더라고요.”
↑ 사진=이현지 기자 |
선배들과 연기를 하면서 부담은 없었을까. 여회현은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사실 그보다는 촬영이라는 자체가 주는 부담감이 더 컸다”고 말했다. 촬영이라는 자체가 부담감이 없이 할 수 없는 것이며, 이 같은 부담은 연기에 대한 책임감으로 돌아와 더 열심히 하게 되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었다.
“선배들이 워낙에 잘 도와주세요. 연기도 잘하시는데 인성까지 좋으셔서, 도리어 제가 가진 부담을 덜어주실 때도 많았어요.”
‘기억’에서 승호는 무척이나 복잡한 캐릭터였다. 기본적인 베이스는 동우를 죽였다는 죄책감이며, 여기에 부모의 비뚤어진 보호로 인해 자백할 기회를 놓친 피해자이자, 아버지 뒤에 비겁하게 숨어 다른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데 동참하는 비겁한 범죄자이기도 했다. 누구보다 세밀한 감정변화와 묘사를 필요로 하는 인물이었는데, 여회현은 이를 신인답지 않은 연기력으로 어색함 없이 소화하며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알지 모르겠지만 ‘기억’은 청소년 범죄를 정말 많이 다룬 드라마였어요. 승호도 그 중 하나였죠. 청소년 때 사건 크고 작은 사건사고 없이 자란 아이가 어디 있겠느냐 만은, 승호는 너무나도 극단적인 범죄를 저질렀잖아요. 그로 인해 무거운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지만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잃을까 두려워 죄를 고백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악행을 저지르지도 못하는 겁쟁이였죠. 제가 봤을 때 승호는 뺑소니 피해자 부모에게 사죄를 하느냐, 아니면 계속해서 침묵하느냐 그 갈등선상에 있었던 것 같아요.”
여회현은 자신이 연기한 승호라는 캐릭터에 대해 “참 안타까운 인생”이라고 정의했다. 어쩌면 이승호는 가장 극단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인물이라고 말한 여회현은 그렇기에 이를 연기하기가 더욱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승호는 뺑소니 사건 이후 우울해지고 자신을 감추는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인물이에요. 이 같은 역할을 연기하다보니 공감도 안 되고, 표현하기도 힘들었죠. 겪었던 사건의 갭도 너무 컸고요. 처음 승호를 만났을 때는 아빠 뒤에 숨어 남 탓만 하는 비겁한 놈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캐릭터 분석을 하고 선배님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조금씩 그 아이가 이해되기 시작하더라고요. 지금은 그냥 불쌍하고 안타까운 아이 같아요.”
↑ 사진=이현지 기자 |
웃는 모습보다 우는 모습을, 기쁜 감정보다 우울한 감정을 보여주었던 이승호와는 달리 실제 여회현은 웃기도 많이 웃고, 농담도 잘 하는 쾌활한 청년에 가까웠다. 웃는 얼굴이 더 잘 어울리는 배우 여회현, 웃는 얼굴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지 몰랐다고 하자 여회현은 다시 한 번 “승호는 저와 전혀 달라요”라고 선을 그었다.
“승호는 숨겨야 하는 감정이 많았잖아요. 우울하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눈물이 참 많았는데, 저는 승호와 달리 속마음을 숨기지 못해요. 감정기복도 심하고 하고 싶은 말은 그냥 솔직하게 털어놓거든요. 긍정적이고, 또 밝죠. 그런 제가 승호처럼 감정선을 밑바닥까지 끌어내린다는 것이 쉽지 않았죠. 그래도 저와 정반대의 인물을 연기하면서 어렵기 때문에 재밌었던 것들도 많았어요.”
여회현은 ‘기억’을 하면서 크게 성장했다. 첫 회와 마지막을 비교했을 때 감정처리가 한층 매끄러워졌으며, 몰입도도 또한 높아졌다. 여회현 또한 ‘기억’을 통해 한 뼘 더 자랐음을 인정하며 “연기에 대해 많이 느끼고 또 배웠다”고 말했다.
“‘기억’을 촬영한한 4개월이라는 시간이 저에게는 선물이었어요. 정말 그 사이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배웠거든요. 제게 있어 ‘기억’ 복주머니 같은 작품, 복 그 자체였죠.”
여회현을 성장케 한 것은 하나 더 있다. ‘기억’ 촬영을 하기 전 발생했던 연극 ‘밀당의 탄생’ 공연 취소논란이었다.
↑ 사진=이현지 기자 |
지난 2월 연극 ‘밀당의 탄생’의 주인공으로 캐스팅 됐던 여회현은 갑작스럽게 잡힌 촬영 스케줄로 인해 무대에 오를 수 없게 됐는데, 이를 공연 시작시간 얼마 놔두지 않고 알린 것이다. 촉박한 시간으로 인해 같은 배역을 연기하는 다른 배우들과 스케줄 조정도 어렵게 됐고, 결국 이날 공연은 취소됐다.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관객들은 티켓 값을 전액 환북 받았음에도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고, 심지어 여회현 본인의 사과마저 없다는 사실에 크게 실망했다.
이에 대해 언급하자 여회현은 숙연한 표정으로 “저도 이런 일이 발생할 거라고 상상도 못했고, 당일 날 취소될 거라고 생각을 못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변명할 것도 없이 제 경험 부족이었고, 관객들에게 죄송하다는 말밖에 드릴 말씀이 없어요. 지금에 와서 말하는 거지만, 그때 공개적으로 사과를 드리지 못했던 것은, 일부러 그랬던 것이 아니라 정말 몰랐었어요. 개념 자체가 없었고, 미숙했고, 어리석었죠. 정말 죄송한데 어떻게 해야 할 줄 몰라 많이 힘들었어요. 그래도 감사했던 것은 ‘밀당의 탄생’ 팀에서 많이 격려해 주셨다는 거예요. 같은 실수 반복하지 않도록 앞으로 더 조심하고 잘하면 된다고 말해주는데, 죄송하기도 하고 또 눈물이 날 정도로 감사했어요. 이제 제가 할 일은 안 좋은 생각을 가졌던 분의 마음을 돌리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기회만 주신다면 제가 잘못했던 만큼 더 열심히 하는 모습으로 보답하고 싶습니다.”
여회현은 실수한 만큼 이제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노라고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이 같은 과정들을 통해 한 단계 더 성장한 여회현은 최근 연기 롤모델이 생겼다. 바로 이성민이었다. 여회현은 이성민을 롤모델로 삼은 이유에 대해 “연기는 물론이고 인간성마저 닮고 싶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완벽할 뿐 아니라, 본인의 삶에 행복해 하는 모습 또한 제가 앞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저는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는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사람들에게 기대감을 주고, 최종적으로 믿고 볼 수 있는 배우, 그런 배우가 되는 것이 제 꿈이자 목표에요.”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