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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방심했다. 2018년에 듣는 1996년 곡 '전사의 후예'가 이토록 어색하지 않을 줄이야.
'1세대 아이돌' H.O.T.가 17년 만의 단독콘서트로 팬들을 만났다. 이들은 13일 오후 7시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에서 '포에버 H.O.T.'('Forever High-five Of Teenagers')라는 타이틀로 단독 콘서트를 개최했다.
이번 콘서트는 2001년 팀 해체 직전 마지막 콘서트를 진행했던 그 때 그 장소, 주경기장에서 펼쳐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당시 이들은 "우리는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며 항간에 불거진 해체설을 직접 부인했었기 때문. 하지만 몇 달 뒤 H.O.T.는 공식 해체했고 17년 만인 올해 초 MBC '무한도전-토토가' 특집으로 극적으로 재회했다.
'토토가'로 예열된 분위기를 이어받아 약 반 년 만에 성사된 이번 콘서트를 통해 H.O.T.는 여전히 건재한 '전설의 아이돌'임을 입증해냈다. 이들은 17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이틀간 10만석을 완벽하게 매진시키며 뜨거운 주가를 과시했다.
돌이켜보면 이들은, 지금은 'K팝'이라는 표현이 더 익숙한 한국 대중가요사에 혁명과도 같은 획을 그은 팀이었고, 그 자체로 '아이돌 시대'를 열어 젖힌 신드롬의 주인공이자 일종의 문화 현상이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도 현역 아이돌도 감히 넘보기 힘든 티켓 파워를 지닌 '역대급' 그룹이다.
공연장은 입추의 여지가 없이 들어찼다. 3층 꼭대기 시야제한석까지 꽉 찬 관객은 이날 하루만 5만 명으로 공식 집계됐다. H.O.T. 팬클럽을 상징하는 흰 우비를 입은 그 시절 소녀들은 어느새 3040 세대가 됐지만 마음 속에 간직해 온 '오빠'들을 만나는 설렘으로 시종일관 들뜬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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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무대 위에서만큼은 세월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멤버 개개인의 실력은 업그레이드 된 듯 보였다. 뮤지컬로 더욱 다져진 리드보컬 강타의 보컬은 공연의 완성도를 더했고 중국에서 꾸준히 활동을 이어온 장우혁의 퍼포먼스는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문희준은 여전한 카리스마와 입담으로 리더의 존재감을 과시했고, 토니안 역시 '미우새' 속 부모님 속 썩이는 노총각아들이 아닌, 수많은 '안승호 부인'들의 남편으로 돌아갔다. 뜻밖에 예능 늦둥이의 가능성을 보인 이재원 역시 무대에서만큼은 H.O.T. 막내의 모습 그대로였다.
오프닝을 장식한 데뷔곡 '전사의 후예'를 비롯해 '늑대와 양', '투지'로 시작부터 무대를 불태운 이들은 '더 웨이 댓 유 라이크 미', '아웃사이드 캐슬', '열맞춰', '아이야', '환희', '너와 나', '내가 필요할 때' 등 다채로운 무대로 이어졌다. 문희준, 장우혁, 토니안, 강타, 이재원 다섯 멤버들의 개성이 돋보인 개별 무대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긴 세월을 돌아 17년 만에 팬들 앞에 선 만큼 어느 때보다 솔직하고 진솔하게 마음을 건네기도 했다. 공연 초반, 문희준은 "2001년 2월 27일 이 공연장에서, '우리는 절대 떨어지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고 나서 다시 이 무대에 서기까지 17년이라는 너무 긴 시간이 걸린 것 같아서 너무 죄송한 마음이 앞선다. 하지만 17년 동안 우리가 추억을 못 쌓은 만큼 오늘 많은 추억 쌓고 돌아가셨으면 좋겠다. 17년 만이지만 17년 전에 했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우리를 지켜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지금 이 순간이 실감나지 않는다"던 이들은 공연 중간중간에도 믿어지지 않는 감회를 드러냈다. 장우혁은 "먹먹하다. 이게 실제인지, 아니면 내가 TV를 보고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다. 너무나 감격스럽다. 또 17년 만인데도 이렇게 많은 분들이 오셨다니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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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타는 "여기까지 오는 동안 죄송한 마음도 많았다. 어찌 됐든 우리의 이야기를 통하지 않은 보도들도 많았고, 그럴 때마다 실망하셨을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늦었더라도 이 자리에 함께 모일 수 있어 기쁘죠? 앞으로도 자주 이렇게 모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해 팬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우리들의 맹세'로 17년 전 약속을 지키게 된 뭉클함을 배가시킨 이들은 '캔디', '행복' 등 국민가요로 사랑받은 선곡으로 열광의 무대를 이어갔다. '캔디' 활동 당시 무대 의상을 그대로 재현해 낸 이들의 무대에 관객들의 표정은 미소로 가득했다. 어쩌면 인생에서 어떤 걱정도 없이 그저 즐거웠던 시절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듯, 행복 그 자체였다.
'전사의 후예'로 시작된 공연의 피날레는 '위 아 더 퓨쳐'였다. '하이 파이브 오브 틴에이저'다운 가사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강렬했고, "위 아 더 퓨쳐"를 외치는 이들의 무대도 여전히 뜨거웠다.
앙코르 'GO! H.O.T.'와 '캔디', '빛'까지 5만 관객이 함께 만들어 낸 3시간 20분의 공연을 통해 H.O.T.의 과거와 현재를 봤다. 그리고 이날의 공연은 이들이 써내려 갈 '새로운 페이지'를 기대하게 했다. H.O.T.는 14일 같은 장소에서 다시 한 번 5만 명의 팬들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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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on@mk.co.kr[ⓒ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