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부실, 전세금 대란, 구제역 파동에 취득세 인하 논란과 한ㆍEU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 번역 오류에 이르기까지 최근의 정책 실패 사례에는 공통점이 있다. `눈 뜨고 당했다`는 사실이다. 그 과정도 판박이처럼 닮은꼴이다.
`아전인수식 상황 판단 실수→방치 및 교정 기회 상실→위기 상황 발생→기존 판단에 얽매인 미온적 대응→위기 확대 재생산`의 악순환을 되풀이했다는 분석이다.

이명박 정부의 한 전직 장관은 "(최근 벌어지고 있는 정책 난맥상의) 원인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부작위(不作爲)"라며 "문제가 될 것임을 뻔히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공직자들이 제때, 제대로 대응하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러니 정책 실패가 엇비슷한 형태로 되풀이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발 방지 대책은 거의 없다.
잘못을 바로잡지 않은 채 되풀이되는 정책 실패는 경제 전반의 펀더멘털(경제 기초체력)을 허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다.
천수답식 정책 대응은 더 큰 위기 상황에 대한 대응능력을 크게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1997년 말 외환위기도 따지고 보면 환율ㆍ관세 분야의 작은 실패가 제때 교정되지 못하고 확대 재생산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저축은행 부실 사례가 딱 그렇다.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0월 저축은행 구조조정을 위해 공적자금 투입을 구체적으로 검토했으나 관계부처 협의 과정에서 무산된 사실이 확인됐다. 조기에 저축은행 부실 문제를 진압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수개월을 허송세월한 셈이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당시 문제의 심각성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됐는지 심히 의심스럽다"며 "개괄적인 보고만 이뤄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전세 대책 역시 좌충우돌만 거듭하다 화(禍)를 키운 사례다. 올해 초 1ㆍ13 전세대책이 나오기 전까지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 정창수 1차관, 박상우 주택토지실장은 "서울 송파 등 일부 지역의 전세금이 입주 때 과도하게 낮아 재계약 시기에 주변 시세에 맞춰 오르는 `기저효과`일 뿐"이라며 시종일관 문제의 심각성을 외면했다.
정말 몰라서였을까. 전ㆍ월세대책 사령탑인 정종환 장관은 전세금이 급등세를 보이던 지난해 11월 자신이 2007년 분양받은 중구 회현동 14억원대 주상복합아파트를 5억원에 전세를 놨다. 해당 주택은 정 장관이 인사청문회 때 `실거주용`이라고 답했던 주택이다. 개별 정책사안뿐 아니라 거시정책 기조까지도 이명박 정부는 동일한 실패 패턴을 보이고 있다. 7ㆍ4ㆍ7(7% 성장, 4만달러 소득, 7대 강국) 공약을 포기하고 명확한 정책목표를 새로 설정하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중국 고성장의 수혜국이면서도 미국발 위기를 빌미로 경기부양책을 쏟아부은 덕분에 임기 전반 2년간의 성장세는 `낙제점`을 면했는지 모르지만 앞으로 남은
지난 정부의 한 전직 장관은 "공약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대통령의 입만 바라본 게 실패를 키운 배경"이라며 "이런 마당에 마땅히 동원할 정책 대안도 없어 사람을 바꿔도 소용이 없는 정책 함정에 빠진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특별기획팀 = 이진우 차장(팀장) / 송성훈 기자 / 신헌철 기자 / 이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