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끊임없는 핵실험을 통해 핵보유국을 향한 야욕을 키워왔습니다.
3차 핵실험에 성공하기 까지 50년에 걸친 핵개발의 야욕사를 김태일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 기자 】
북핵의 역사는 5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북한은 1960년대 구소련으로부터 연구용 원자로를 도입한 데 이어 1980년대 후반부터 중국의 기술을 토대로 핵연료 가공공장과 재처리 시설 기술 등을 확보합니다.
이어 1993년 3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사찰을 빌미로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돌연 탙퇴를 선언합니다.
이후 13년 만인 2006년 7월 대포동 2호 미사일을 발사한 데 이어 10월 9일 1차 핵실험을 전격적으로 단행합니다.
핵실험은 예고 6일 만에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동쪽 갱도에서 이뤄졌습니다.
당시 사용한 2kg의 플루토늄은 폭발력 1킬로톤, 3.6강도의 인공지진을 발생시킵니다.
2차 핵실험은 3년 후인 2009년 이뤄졌습니다.
▶ 인터뷰 : 조선중앙통신 보도(2009년)
- "2009년 5월 25일 또 한차례의 지하 핵시험을 성과적으로 진행하였다."
2차 핵실험 때 사용한 플루토늄량은 5kg.
당시 지진파는 리히터 규모 4.5로 1차 때보다 적어도 20배 이상 강했습니다.
북한은 2차 핵실험 때도 어김없이 핵실험 50일 전에 장거리로켓 '은하 2호'를 발사했습니다.
이를 종합해보면 로켓 발사→핵실험 예고 →핵실험의 비슷한 과정을 되풀이했습니다.
50년간에 걸친 북한의 도전과 야욕은 이제 로켓 은하 3호에 핵탄두를 탑재해 세계 9번째 핵보유국이 되려는 속셈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MBN뉴스 김태일입니다.
영상편집 : 하재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