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시 청문회법’으로 불리는 국회법 개정안을 놓고 정치권이 교착상태에 빠진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이 법제처 검토 결과가 나오는대로 거부권 행사 방침을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25일 여권 핵심 관계자에 따르면 “법제처가 의회회기 불연속 원칙, 삼권분리 원리 등을 감안해 위헌 여부를 검토하고 위헌으로 판단되면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만약 법제처가 이번주 내로 정부 부처의 의견 수렴을 거쳐 청와대에 검토결과를 전달하면 오는 31일 황교안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국무회의에서 재의 요구를 의결할 수도 있다. 이 경우 해외 순방 중인 박 대통령은 전자서명을 통해 국회에 거부권을 행사할 방침이다. 거부권 행사 지연으로 국론분열이 지속되고 임기 교체에 따른 새 국회의 재의결 권한 여부 등 여러 논란이 불거지는만큼 조속히 매듭짓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법제처의 검토가 지연되면 박 대통령이 법률 공포 시한인 다음 달 7일 직접 거부권을 행사하는 시나리오도 아직 유효하다.
청와대의 이러한 기류 속에 우상호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원내대표와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긴급 회동을 갖고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시 공동 대응하기로 합의했다.
우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박 원내대표와 만난 후 “지난 19일을 전후로 해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여당의 태도가 바뀌었고 이것은 정략적 의도가 있다. 야당을 몰아가려고 덫을 놓으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거부권을 행사하면 (국민의당과) 공동 대응하기로 합의했고 아직 무엇을 할지는 안 정했다”고 말했다. 우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의 오찬에서 “거부권 행사가 거의 100% 확실하다고 본다”며 “국민들은 이게 야당 법안인 줄 알지만 우리가 해달라고 한 법도 아니다. 우리가 이 법 때문에 강공을 펼 이유가 없고, 이 법을 지키기 위해 난리치고 싸울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20대 국회에서 유사 법안을 발의할 생각이 없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좀 더 개선된 내용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답했다.
박 원내대표도 “필요에 따라서는 (더민주와) 강한 공조를 할 것”이라며 “생산적이고 일하는 국회를 위해 협력하겠다고 한 것을 자꾸 강경으로 몰아 넣으면 우리가 어디로 가겠나”고 지적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 상임대표 역시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상시 청문회법은) 일하는 국회로 가는 징검다리가 될 것”이라며 “국회와 정부 간 힘겨루기로 접근하면 안된다. 이런 관점은 소모적 내전을 벌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치권에 핵폭탄급 논란을 불러일으킨 ‘상시 청문회법’에 대해 정치권의 법안처리 과정이 미숙했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국회법 개정안은 지난해 7월 9일과 15일 각각 소관상임위인 국회운영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여야 이견없이 처리됐다. 국회법 개정안에는 지난 2014년 7월 3일 정의화 국회의장이 발족한 국회개혁자문위원회에서 제안한 국회개혁방안 16개 중 ‘상시 청문회’를 포함한 5개 의제가 포함됐다.
그러나 운영위 통과 당시 여당 의원들은 전날 유승민 전 원내대표 사퇴(7월 8일)로 당내 분위기가 뒤숭숭한 터라 안건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운영위와 법사위에 모두 참석했던 김도읍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유승민 사태에 너무 함몰돼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검토가 거의 없었고 같이 참석한 동료 의원에게 물어봐도 기억조차 없다고 하더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국회법 개정안이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원유철 전 원내대표가 원내지도부에 입성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국회 고위 관계자는 “법사위 통과 이후 총리실에서 상시 청문회 관련 내용에 대해 우려를 표했고 새누리당이 이를 받아들여 그 때부터 상정이 지연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국회법 개정안은 법사위 통과 이후 지난 19일 본회의를 통과하기까지 무려 10개월간 계류됐다.
국회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상정하는 과정도 석연치 않다. 정 의장은 당일 본회의 처리안건과 순서를 정해놓은 ‘당일 의사일정’을 교섭단체대표의원과 협의하는 기존 관행을 깨고 단독으로 작성했다. 정 의장은 직권상정 논란이 불거지자 국회법에 따라 교섭단체 간 ‘합의’가 이뤄지지
그러나 지난 19일 본회의를 통과한 탄소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과 고용보험법 일부개정안은 각각 여야가 반대해 정 의장이 본회의 상정을 하지 않았고 법안처리가 지연돼 왔다.
[정석환 기자 / 안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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