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민주주의는 비온 뒤 땅처럼 더 단단해 질 것이다."
탄핵심판 재판장으로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결정문'을 낭독했던 이정미(55)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퇴임 후 첫 공식 석상에서 탄핵심판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그는 올해 3월13일 퇴임한 후 지난 4월부터 고려대 석좌교수직을 맡고 있지만 그간 공개 강의 등에는 나서지 않았다.
18일 이 교수는 서울 성북구 고려대 CJ법학관에서 열린 '고대 법전원과 미국 UC얼바인 로스쿨 공동학술대회'에서 기조연설을 맡았다.
이 교수는 탄핵심판 당시보다 헤어스타일이 짧고 단정한 모습이었다. 밝은 표정으로 청중에게 강연했고 가끔씩 유머도 구사해 좌중을 웃기기도 했다.
그는 전체 강연의 절반 가까운 시간을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 과정을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이 교수는 "이 사건은 재판관이나 국민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역사의 한 부분이고 사상 최대의 국가위기 사태였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헌법재판소)는 모든 다른 사건 심리를 중단한 채 92일간 거듭 고뇌한 끝에 결정을 내렸고, 대다수 국민이 승복하셨다"고 그는 설명했다. 돌이켜보면 약간의 혼란스러운 사태는 있었지만 유혈사태 같은 큰 혼란 없이 비교적 빠르게 국정 공백이 평화적으로 수습됐다는 게 이 교수의 평가다.
심리 중 가장 고민이 컸던 부분과 관련해 그는 "대통령 권한 남용을 견제할 필요성과 함께, 탄핵소추의결권을 지닌 국회의 권한 남용으로부터 대통령의 독립성을 보장하려는 양 측면사이 숙고가 컸다"고 말했다. 이번 탄핵결정으로 말미암아 향후 정권에서도 불만이 생길 때마다 국회가 탄핵소추카드를 꺼낼 부작용에 대해서도 심사숙고를 거친 결정이라는 얘기다. 아울러 이 교수는 "매우 아프고 힘들 결정이었다"면서 "하지만 한국 속담에 '비 온 뒤 땅이 굳는다'고 했듯, 힘들고 어려웠지만 법치주의와 민주주의가 한 걸음 더 도약하는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한국의 짧은 민주주의 역사에서 헌법재판소의 역할에 대해 강조했다. 이 교수는 "헌재가 국민의 기본권을 확고하게 보장하면서 한국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공고히 발전시킨 수호자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최근 세간에서 차기 헌법재판소장 또는 대법원장 후보로 김영란 전 대법관과 함께 가장 주목받는 인물 중 하나다.
강연을 마친 뒤 취재진으로부터 "차기 헌재소장·대법원장 하마평에 오르고 있는 데 제의 받으면 어떡하겠느냐" "현재의 사법부 개혁 파동
현재 양승태 대법원장의 임기는 올해 9월까지이며, 헌재소장은 지난 2월부터 공석으로 남아있는 상황이다.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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