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0대 여성 두명이 필리핀에서 떡볶이 장사를 했다. 당연히 망했다. 첫 실패에 고집을 접지 않은 이들은 결국 필리핀에 K-FOOD를 알린 '서울시스터즈' 브랜드를 만들었다. 시작은 단돈 300만원, 그것도 동생의 월세 보증금이었다.
최근에는 K-FOOD 스타트업으로 한국에 돌아와 '김치시즈닝믹스'를 개발했다. 이들은 9월 인도에서 열린 세계식품박람회에서 혁신제품상을 받았고 해외수출 판로가 열릴 날이 머지않았다는 기대를 품고 있다.
◆필리핀 간 휴학생, 야시장에서 떡볶이 팔다보니…
2006년 22살의 대학생 안태양씨는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밑천삼아 어학연수차 필리핀에 갔다. 통장이 바닥을 보일 즈음 '이대로 한국에 갈 수 없다'는 생각에 안씨는 다양하게 경험했던 알바 경험을 살려 뭔가 팔아보겠다는 결심을 했다. 아이템은 한국 대표 분식이자 안씨가 애정하던 메뉴인 '떡볶이'였다.
혼자는 역부족이라 당시 한국 레스토랑에서 요리사로 일하던 동생을 설득했다. 2008년 필리핀 야시장에 자리를 잡아 떡볶이 가판을 열었다.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등 K-POP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던 즈음이라 막연히 '잘될거야'라고 기대에도 부풀었다.
"당시 갖고 있던 돈 300만원을 몽땅 투자했어요. 떡볶이 한 그릇이 필리핀 돈으로 99페소, 약 2300원 정도였는데요. 12시간 동안 장사하면서 저희가 달랑 두 접시 팔아서 쫄딱 망했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왜 떡볶이가 필리핀 사람의 이목을 끌지 못했는지 분석에 나섰고, 현지인의 입맛을 분석하기 위해 무료시식회를 열어가며 맛을 조절하는 한편 적절한 단가의 재료 찾기위해 뛰어다녔다.
↑ 필리핀 야시장에서 '서울시스터즈'로 한국 분식메뉴를 판매하던 당시 모습. |
◆중국 화교 회장의 제안 "장사꾼이 아닌 사업가가 목표라면…"
그즈음 중국 화교 회장이 그들을 찾아왔다. 한국 관련 사업을 기획하고 맡아줄 사람이 필요한데, 그 적임자로 서울시스터즈를 영입하고 싶다는 제안이었다. 우여곡절을 거쳐 엄연한 '사장' 반열에 오른 안 대표는 단박에 거절의사를 밝혔지만, 그 회장은 삼고초려를 마다하지 않았다.
안 대표는 "그 화교 회장이 '장사꾼이 아닌 사업가가 되고 싶다면 자기 밑에 들어와서 배워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그 한마디에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매장을 다 정리하고 (그 분 회사로) 들어갔어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안 대표와 동생은 함께 필리핀 외식·무역전문기업인 GNP TRADING에 입사, 신사업팀에서 5년간 K-FOOD 브랜드를 개발했다. 'K-pub BBQ'와 '오빠 치킨' 등 대형 뷔페 레스토랑을 론칭, 현재 12개 매장이 필리핀 현지에서 운영 중이라는 설명이다.
잠시 한파가 온 적도 있었다. K-FOOD 인기가 사그라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또 예상치 못한 변수가 그들에게 큰 도움을 줬다.
"2016년쯤이었어요. K-POP과 K-DRAMA가 더이상 예전같이 히트를 치지 못하면서 K-FOOD가 바로 직격탄을 맞았거든요. 당시 저와 동생이 매일매일 '뭐해먹고 살지?' 이런 고민을 했는데, 2017년과 2018년 K-POP이 전과는 다른 규모로 몰아쳤어요. 주인공은 전세계가 열광하는 방탄소년단인데요, BTS 덕분에 K-FOOD가 그야말로 심폐소생술을 했습니다. 정말 감사했어요 BTS!"
↑ 푸드컬쳐랩이 개발한 `김치 시즈닝 믹스` 제품(사진 오른쪽)과 쌀국수에 뿌린 모습. [사진 = 푸드컬쳐랩] |
회사원 생활을 정리하고 2017년 12월 한국으로 들어온 안씨는 K-FOOD 브랜드 개발 과정에서 떠올린 아이디어를 구체화했다. 소스가 액체가 아닌 파우더 형태라면 운송은 물론 보관이나 통관 절차도 액체보다 수월할 것이라는 힌트를 얻었다. 이번 메뉴는 역시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골랐다. 김치가 주인공으로 파우더 형태인 '김치 시즈닝 믹스'가 최종판이다.
안 대표는 "해외에서 10여년 간 외식업에서 일하면서 외국인들이 젓갈이나 마늘 냄새를 너무도 싫어한다는 것을 몸소 느꼈다. 이를 감안해 김치 시즈닝은 그 어떤 냄새도 나지 않게 해 외국인도 편하게 먹을 수 있고, 종교 또는 건강 등 이유로 김치를 못 먹는 사람도 먹을 수 있게 만들었다"며 "국내외 식품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13번 테스트를 거쳐 유산균도 포함시켰다"고 설명했다.
현재 개발은 물론 제품 디자인까지 끝냈다. 베트남 등 해외 수출 판로를 열기 위해 뛰던 중 최근 큰 상을 받았다. 지난 9월 중순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국제 식품박람회 SIAL 2019'에서 전체 2등에 해당하는 혁신제품상 은상을 거머쥔 것.
안 대표는 "김치를 만드는 용도는 물론 감자튀김, 팝콘 등 다양한 음식에 뿌려 먹어도 잘 어울린다. 양꼬치를 쯔란 대신 김치 시즈닝에 찍어 먹을 수도 있고, 소금이나 후추 대용으로 간을 맞출 때 김치 시즈닝을 사용할 수도 있도록 고안했다"며 "현재 미국, 프랑스, 베트남, 인도 등 현지 유통사들과 수출을 협의 중이다. 올해 안에 좋은 소식이 들릴 것 같다"고 밝혔다.
↑ 안태양 푸드컬쳐랩 대표는 자체 개발한 '김치시즈닝믹스'로 지난 9월 중순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국제 식품박람회 SIAL 2019'에서 전체 2등에 해당하는 혁신제품상 은상을 거머쥐었다. |
안 대표는 "장사 특히 외식업계는 체력이 가장 중요하다. 그 다음은 공부"라며 "K-FOOD는 아직도 해외에서 경쟁력이 충분하다. 다만 해외 시장에서 어떤 식으로 해야하는 지는 꾸준한 공부와 연구가 필수"라고 조언했다.
[디지털뉴스국 이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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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튜브] '필리핀에서 떡볶이로 일 매출 300만 원?!' 안태양 대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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