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활성화를 위해 정부와 공공기관들이 사회간접시설(SOC) 예산을 1분기에 조기 집행하면서 정작 건설사들은 보증 수수료 부담을 떠안는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전형적인 탁상행정 사례라며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5일 건설·부동산업계에 따르면 공공기관 등 발주처가 예산을 미리 집행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원도급 건설사는 공사 진행에 앞서 집행된 선급금 때문에 선급금 이행 보증 수수료 부담을 안게 되고 당초 의도했던 돈이 도는 효과가 일부 반감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돈을 미리 받으려면 하도급 건설사들도 공제조합 보증을 받아야 해 수수료가 건설업계에 이중으로 부담된다. 공사 진행에 맞춰 지급하는 기성 방식과 대조돼 선호하지 않는 셈이다. 정부는 올 1분기 재정 조기 집행 실적이 목표치(134조원) 대비 14조3000억원 초과한 148조3000억원을 달성했다고 밝힌 바 있다.
수출 부진, 소비 위축, 중국 경기 둔화 등 대내외 경제여건 악화에 대응하기 위해 조기 집행한 것이다. 이 중 중앙재정은 92조1000억원을 집행해 1분기 계획(86조5000억원)보다 5조6000억원 초과 달성했다. 하지만 한 건설사 관계자는 "1분기에 SOC 예산 집행이 집중됐는데 겨울 등 계절적 요인으로 공사에 착수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아 선급금을 받아봤자 하도급 기업들이 자금을 받아가지 않아 고스란히 보증 수수료만 부담하게 됐다"고 말했다.
선급금은 보통 공사금액의 40~70%에 달하는데 일부 원도급 공사를 맡은 중견 건설사는 보증 수수료 부담 때문에 선급금을 적게 받으려고 해 실랑이가 벌어지는 형국이다. 공사 선급금을 현금으로 받으려면 절대 금액의 1% 안팎에서 기본 보증 수수료를 내야 한다. 입찰보증 선급금을 지급하는 보증 수수료가 가장 비싼 축에 든다. 협력사들이 자금을 나눠받을 때 원도급 건설사에 또 보증을 끊어 현금을 받아가는 구조가 되다 보니 선급금을 지불하는 과정에서 수수료가 이중으로 발생하고 보증기관이 챙기는 수수료가 기성공사 수수료보다 커지는 셈이다.
기성공사는 계약보증을 끊으면 중간중간 보증서를 끊을 필요가 없고 보증 수수료율도 낮아 시공사들에는 부담이 덜하다. 특히 보증 수수료가 건설사 신용등급에 따라 부담이 커지는 구조라서 실제 관급공사를 통해 얻는 수익 대비 보증 수수료가 심하면 20%에 달하기도 한다.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아예 기성공사처럼 발주처에서 하도급 업체에 자금을 직접 집행하는 '하도급 직불제'를 실행하면 선급금에 따라 붙는 보증 수수료 부담을 덜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법정관리를 졸업한 건설사는 수수료 부담이 더 크다 보니 관급공사에서 예산 조기 집행이 두려운 대표적 사례다. 기성공사는 기성검사 확인서를 낼 수도 없고 보증을 받아 제출해야 한다. 게다가 선급금의 25%를 초과하는 금액은 공동계좌에 묶여 쉽게 쓸 수 없는데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관급공사는 이익이 안 나더라도 수주 실적과 기술자들 관리 차원에서 참여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공기업들이 예산 조기 집행을 촉구하다 보니 건설사들이 억지춘향식으로 보증수수료를 부담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이한나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