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회사 대표인 50대 A씨는 재작년 미국 바이오펀드에 6000만원을 투자했다가 그해 1년간 무려 50%의 수익률을 올려 3000만원을 벌었다. 기대 이상의 성과에 매우 흡족해하던 A씨는 얼마 뒤 세무서로부터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이니 자진신고하고 세금을 납부하라"는 통지를 받았다. 납부할 세금을 직접 계산해야 하는데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 도저히 할 수 없었다. 결국 100만원을 주고 세무사를 고용해 이를 처리했다. 수익의 40%에 달하는 세금, 세무사 고용 비용, 스트레스 등을 생각하니 50%의 수익률이 그리 크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고액 자산가들은 대부분 A씨처럼 세금 때문에 해외펀드 투자를 꺼린다. 사실상 투자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해외펀드 활성화를 위해서는 현재 2000만원인 금융소득종합과세 소득한도가 대폭 상향되거나 해외주식 직접투자와 같이 분리과세를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개인투자자들은 해외펀드 투자 시 매매차익과 환차익에 대해 15.4%의 세금을 내야 한다.
또 이를 통해 벌어들인 소득이 2000만원을 넘으면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가 돼 최대 41.8%의 세금을 내야 한다. 업계에서는 줄곧 이 2000만원이 너무 적다고 지적하고 있다. 해외펀드에 1억원을 투자해 20% 이상 수익이 나면 소득이 2000만원을 넘어가는데, 누가 수억 원의 고액을 투자하겠느냐는 얘기다. 여러 펀드에 중복 투자할 경우 A펀드에서는 수익이 나고 B펀드에서 큰 손실이 나 결론적으로 투자자가 손실을 보게 됐을 때에도 세금을 내야 하는 문제도 있다.
전용배 프랭클린템플턴투신운용 대표는 "고액 자산가들이 자산배분 차원에서 해외펀드에 투자해 금융소득을 벌어들이는 것은 기업이 제품을 수출해서 외화를 벌어오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개인들이 십시일반 몇백만 원, 몇천만 원씩 투자한다면 펀드가 규모의 경제를 일으키기 어려워 운용사도 상품 자체를 유지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해외투자에 관심 있는 고액 자산가들은 펀드 대신 주로 직접투자, 상장지수펀드(ETF), 역외펀드 등을 활용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양도소득세에 대한 분리과세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일례로 해외주식에 직접투자할 때는 모든 주식을 합산한 실현손익에서 250만원을 공제하고 나머지 금액에서 양도소득세 22%를 분리과세해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A종목과 B종목에 투자했을 때 손익을 합산해 250만원보다 적으면 납부할 세금도 없다.
고액 자산가들을 주로 상대하는 강남의 한 프라이빗뱅커(PB)는 "고액 자산가들은 기본적으로 세금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세금을 많이 내야 하는 상품은 선호하지 않는다"며 "해외펀드는 아예 추천 대상에서 제외하고 대신 ETF 등을 권하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 말까지 한시적으로 도입한 비과세 해외주식형 펀드도 고액 자산가들에게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비과세 한도가 3000만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에 자산운용업계에서는 금융소득종합과세 소득한도를 기존 2000만원에서 5000만원 정도로 대폭 올려주든지 아니면 해외주식 직접투자나 ETF 투자처럼 분리과세를 적용
최만연 블랙록자산운용 대표는 "이대로는 운용사들이 해외투자를 위한 다양한 상품을 내놓기가 어렵고, 이는 곧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상품 다양성을 저해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효혜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