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우리 중 한 쪽은 단단히 미쳤다. 다만 그게 내 쪽이 아닌 건 분명하다.”
1889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왕립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된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1번을 들은 뒤 당대 최고 권위를 누리던 음악비평가 에두아르트 한슬리크는 이같은 독설을 내뱉었다. 그는 이어 “도무지 어떤 장르에 속한다고 할 수조차 없는 음악”이라며 논의에 종지부를 찍었다. 익숙한 교향곡의 문법에서 한참 벗어난 데다 우리 문화로 치면 ‘나비야’ 같은 유명 동요와 통속적인 카바레 풍 멜로디를 기묘하게 조합한 말러의 첫 교향곡은 ‘미친 음악’으로 취급받기 십상이었다.
28살 청년이던 말러는 초연의 실패 후 깊은 시름에 빠졌지만, 이는 파격과 도발적 아름다움으로 점철된 그의 작곡 여정의 서막에 불과했다. 훗날 그는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 시대는 올 것”이라 했다.
과연 그의 시대는 왔다. 생전은 물론 세상을 떠난 뒤 50여년 간 거의 잊혀졌던 그의 교향곡들은 오늘날 베토벤, 브람스, 차이콥스키 등의 음악과 함께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 받는 작품으로 거듭났다. 1960년대 미국의 지휘 거장 레너드 번스타인이 집중적으로 무대에 올린 이래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클래식 변방인 한국에서도 2000년대 초반부터 임헌정·정명훈 지휘자 등의 활약으로 꾸준히 전곡이 연주되는 등 대중적 인기를 끌었다.
그중에서도 교향곡 1번은 혈기왕성했던 시기 말러의 격정과 패기가 고스란히 담긴데다 그의 나머지 교향곡들보다 상대적으로 길이가 짧고 요구되는 악기의 수와 지휘·연주 테크닉의 강도가 덜한 덕에 세계적으로 가장 자주 무대에 오른다. 올해 국내 주요 공연에서만 최소 6번 이상 잡혔을 정도다. 황진규 음악칼럼니스트는 “작곡가 쇤베르크는 1번 교향곡을 ‘하나의 씨앗’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며 “말러 자신의 온전한 자아가 확립되기 전의 작품이지만 젊은 시절 그의 사랑과 고뇌가 오롯이 분출된 결과라는 점에서 오늘날 의미 있게 인식된다”고 전했다. 당대 대중음악과 동요 등이 녹아든 문제의 3악장에 대해선 “당시 상류층은 받아들이기 힘들었겠지만 다양한 문화적 요소의 인용과 패러디가 자연스러운 오늘날 관객에게는 외려 흥미롭고 ‘화끈하게’ 다가갈 수 있는 매력이 있다”고 덧붙였다.
오는 7월 7~8일 서울시립교향악단 역시 말러 교향곡 1번을 간만에 연주한다. 마침 7월 7일은 말러가 태어난 지 꼭 156년이 되는 날이라 이날 공연의 이름은 특별히 ‘해피 버스데이 말러’다.
공연은 7월 7~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1588-1210
[오신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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