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철강·석유화학 산업의 구조조정 방안을 내놨지만 해당 업계는 이것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며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29일 철강·석유화학 업계에 따르면 전날 개최된 제3차 산업구조조정분과 회의에서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석유화학·철강 업계가 각각 2개 품목의 생산량을 줄여야 한다”는 방안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정부는 한국철강협회와 한국석유화학협회가 각각 발주한 연구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했다. 철강은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석유화학은 베인앤컴퍼니가 연구용역을 수행했다.
◆ 철강업계 “연구용역 보고서, 진단부터 틀려”
BCG는 전날 발표한 철강 구조조정 연구용역 최종 보고서에서 후판과 강관의 공급을 줄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선박 건조에 쓰이는 후판은 전방 산업인 조선업황 침체를 이유로 그리고 파이프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강관은 제조업체 난립으로 인한 공급 과잉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후판을 생산하는 업체들은 BCG가 내놓은 최종 보고서의 진단부터 틀렸다고 지적한다. 후판은 재고를 쌓아 놓고 파는 게 아니라 조선사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생산에 착수하기 때문에 공급 과잉이 발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 자체적으로 생산량을 감축하거나 고부가 제품으로 전환하고 있는 업체도 있다. 동국제강은 기존 3곳이던 후판 생산공장을 1곳으로 줄였고, 세아제강은 구매사가 요구하는 성능을 맞추는 고성능 강관 영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 화학업계 “기업이 먼저 생산량 감축하긴 힘들어”
베인앤컴퍼니는 테레프탈산(TPA)과 폴리스티렌(PS)의 공급은 줄이고, 폴리염화비닐(PVC)·합성고무(BR·SBR)는 생산설비 증설을 중단하고 고부가 품목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석유화학 구조조정 연구용역 최종 보고서를 전날 발표했다.
보고서를 발표하는 자리에 참석한 석유화학업체 최고경영자(CEO)들은 베인앤컴퍼니의 조언을 받아들이겠다고 밝혔지만, 실무진들 사이에서는 시큰둥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한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TPA만 해도 생산 설비가 전남 여수와 충남 대산에 분포돼 통폐합은 힘들고 어떤 업체가 만자 설비를 감축하고 나서야 한다”며 “어떤 업체가 자사의 시장 지위를 약화시킬 생산량 감축에 먼저 나서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국내 업체들이 생산을 감축해 제품 가격이 오르면 그 반사이익을 중국 업체들이 차지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생산량을 줄이면 해당 화학업체가 생산하는 제품 포트폴리오 전반을 조정해야 하는 점도 생산량 감축의 장애물이다. 생산량 감축 대상으로 지목된 TPA와 PS가 다른 소재를 만드는 중간 재료이기 때문이다. 롯데케미칼은 생산한 TPA의 상당 부분을 회사 내부에서 소모하고 있다.
◆ 업계 “연구용역 결과는 참고용”
철강·석유화학 업계에서는 정부의 구조조정 방안을 참고하되 그대로 따를 수는 없다는 의견이 많다. 이미 자체적으로 구조조정을 해온 업체들이 많은 데다 정부도 구조조정을 강제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화학업계 관계자는 “범용 제품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에 나서야 한다는 것은 화학업계가 이미 오래 전부터 고민해온 과제”라며 “그 방법으로 생산량을 감축할지, 수요가 회복될 때까지 버틸지는 각 업체의 선택에 달렸다”고 말했다. 철강업계 관계자도 “정부의 구조조정 방안의 바탕이 된 보고서는 권고안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업체들의 구조조정을 유도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철강·석유화학 업
[디지털뉴스국 한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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