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호현 기자의 Before [김재훈 기자] |
매일경제 3년차 문호현 기자(30)가 패션 과목에서 받을 학점도 결국은 F학점이었다. 지난달 31일 찾아간 서울시 서초구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7층 '갤럭시(Galaxy)' 매장에서 들은 패션 디자이너의 일침. 나름대로 트집 안 잡히게 '무난히' 입고 왔다고 자신했던 기존 믿음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너는 왜 허구한 날 양복 수트랑 티셔츠만 입고 다니냐"라는 말을 회사 안팎에서 숱하게 들어 왔던 기자였지만, "이게 제일 무난하다"는 그간의 믿음만 믿고 끝까지 마이웨이를 고집해 왔다. 패션에 대해 인터넷에서 떠도는 말 '패완얼(패션의 완성은 얼굴)'을 신뢰한 나머지 "어차피 안 되는 얼굴인데 옷 바꿔봐야 무슨 소용"이냐고 지레 자포자기한 것도 한 몫 했다.
"그러면 전 옷을 어떻게 입으면 좋을까요?" "칙칙한 어두운 톤보다는 밝은 색 옷으로 입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포멀한 느낌의 블루 계통 자켓 정도로도 충분히 큰 변화를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삼성물산 패션부문 산하 신사복 브랜드 '갤럭시' 디자인을 맡고 있는 정정화 책임의 설명이다.
"하의도 밝은 톤으로 입어야 키도 커 보이고, 시선을 약간 위로 머무르게 만드는 효과가 있어 확장된 느낌을 준다. 어두운 색깔은 축소된 느낌을 줘서, 날씬한 느낌을 조금 줄지는 몰라도 상대적으로 왜소해 보이게 만든다"고 강조한 정 디자이너는 "무엇보다 하의를 밝게 입으면 브라운 구두·화이트 운동화 등 다양한 신발을 신을 수 있어 굉장히 다양한 변화를 줄 수 있다. 지금처럼 어두운 하의를 입을 경우 그 색깔에 맞춘 구두밖에 신을 수 없어 딱딱한 느낌을 준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최근 남성복 업계에선 '보더리스(borderless)' 스타일링이란 이름 아래, 여성적 색채로만 여겨졌던 그린·레드·블루 등 밝은 색상이 남성용 수트·재킷 등에 다양하게 활용되는 추세다. 특히 미국 색채 전문기업 '팬톤(Pantone)'이 올해의 컬러로 '그리너리(Greenery)'를 선정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그린 계통 컬러가 남성복 아이템에 활용되고 있다.
김영대 삼성물산 과장은 "경기불황과 정치·사회적 혼란이 지속되며 우리 사회의 우울감이 가중되고 있는 점도 이들 밝은 색상의 인기를 높이는 데 일조했다"며 "우울감을 느낄수록 사람들은 밝은 칼라를 통해 다양한 변화를 주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갤럭시도 이런 좀을 감안해 그린 색채에 블루 느낌이 조금 가미된 민트색(틸 블루)을 이번 시즌 키 칼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정 디자이너가 고심 끝에 고른 의상 상의도 이런 밝은빛 블루 색채를 기반으로 삼고 있었다. 첫 번째 상의는 린넨 트위드 소재로 제작된 틸 블루 컬러 재킷이다. 이탈리아 로로피아니사의 소재를 사용해 고급스러운 색감과 함께 착 떨어지는 외관을 연출했다. 두 번째 상의는 울·실크·린넨 혼방소재를 사용한 로얄 블루 컬러의 재킷이다. 린넨의 시원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을 그대로 제공하면서도 깔끔한 스타일링이 돋보이도록 했다.
셔츠는 꽃무늬 패턴을 지닌 캐주얼 린넨 셔츠로, 이탈리아 알비니사에서 만든 고급 소재가 사용돼 착용자에게 청량감을 준다. 양쪽 재킷에 공통으로 매칭될 하의는 라이트 그레이 색상의 데님으로, 최고급 데님 원단으로 알려진 터키 이스코(ISKO)사 원단이 사용됐다. 특유의 은은한 컬러감으로 다양한 재킷과 함께 착장하기 용이하다는 점이 고려됐다.
착장을 마치고 나니 밝은색, 특히 백색에 가까운 하의에서 나오는 산뜻함과 유쾌함이 전신을 꿰뚫는 느낌을 받았다. 어두운빛 옷에서 우러나오는 우중충한 마음에서 일순간이나마 벗어났다는 해방감. 남의 눈을 심하게 의식하는 버릇이 있던 기자가, 신세계백화점 한복판에서 분수에 넘치는 '패션쇼 모델' 역할을 희희낙락 맡을 수 있었던 데도 옷에서 받은 '자신감'이 원천이 됐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 비록 일리있는 말이라 해도, '개인의 완성은 자신감'이며 여기에는 패션이 막중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순간이었다.
다시 '비포어(Before)' 의상으로 갤럭시 매장을 나서며 정정화 디자이너에게 마지막 조언을 부탁했다. "클래식 수트 자켓을 입으실
[문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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