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엔카 중고차 진단 서비스 [사진제공=SK엔카닷컴] |
국내 최초의 자동차는 대한제국 고종황제가 즉위 40주년을 맞아 의전용 어차로 쓰기 위해 1903년 미국 공관을 통해 가져온 포드 모델 A다. 1890년대 후반 서양 외교관이나 선교사들이 국내에 가져온 차가 있지만 정식 절차를 밟아 수입된 차는 고종 어차가 최초다. 1903년을 한국 자동차 원년으로 여기는 이유다.
국내 자동차 역사는 116년에 달하지만 중고차 역사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한국전쟁 이후 자동차 산업이 점차 성장하면서 자동차 생산과 판매가 늘고 덩달아 중고차를 사고파는 행위도 이뤄졌지만 1970년대까지는 국내에서 중고차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일부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던 데다 중고차 딜러를 통한 거래보다는 주위 사람에게 사고파는 행위가 많았다.
중고차 거래는 1979년 서울 장안평자동차매매시장이 조성되면서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이전까지 국내 최초는 물론 최대 타이틀을 보유한 장안평시장은 국내 중고차 유통의 핵심을 담당했다.
장안평시장에서 중고차 거래 방법을 배운 업체 종사자들이 전국 각지에 중고차 매매업체나 시장을 설립하면서부터 중고차 거래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덩달아 장안평시장은 소매시장이자 전국에 중고차를 공급해주는 도매시장 역할도 맡았다.
장안평시장을 앞세운 오프라인 거래는 20년 가까이 국내 중고차 시장의 주류를 형성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중고차 유통의 중심축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현재 중고차 유통의 대세는 '온라인 거래'다. 온라인 중고차 거래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SK엔카다. 국내 온라인 중고차 역사는 SK엔카와 함께 시작됐기 때문이다.
당시 국내 중고차 업계의 벤치마킹 대상이었던 일본 중고차 시장에서는 '중고차 매물 정보지'를 통한 거래가 대세를 형성했을 때다. 생활정보지 벼룩시장이나 교차로에 있던 중고차 코너를 확대한 개념의 중고차 잡지다.
SK엔카는 1999년 SK그룹 사내벤처로 출발했다. IT(정보통신) 기술 발전으로 정보 교류의 시공간적 제약이 없어지면서 닷컴 벤처 바람이 불던 시기였다.
사실 중고차 시장은 정보 교류 부족을 넘어 '정보의 비대칭성'이 심한 곳이다. 정보의 비대칭성은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지 애컬로프 미국 UC버클리대 교수가 선보인 경제학 이론이다.
양측이 갖고 있는 정보에 차이가 있을 때 정보 불균형으로 정보 비대칭성이 발생한다. 정보 비대칭성 때문에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하거나 적게 가지고 있는 측은 자신에게 불리한 의사결정인 '역(逆)선택'을 하게 된다. 역선택은 시장 불신으로 이어져 결국엔 시장 황폐화와 붕괴를 가져온다.
중고차 시장도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사기·범죄 행위가 빈번하기 발생하기 쉬운 곳이다. 판매자인 딜러는 중고차의 상태를 비교적 자세히 아는 반면 소비자는 그 상태를 자세히 알 수 없다.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무사고차를 사려다 오히려 사고차를 비싼 값에 속아 산다. 주행거리가 조작된 차, 침수 흔적을 감춘 차, 사고 규모를 축소한 차를 피하려다 사기꾼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역선택으로 피해를 본 소비자들은 시장을 신뢰하지 않는다. "중고차 딜러는 가족에게도 차를 속여 판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로써 중고차 시장은 신차 판매 증가에 힘입어 양적 규모는 커져 갔지만 질적으로는 성장하지 못하고 오히려 '돈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가는 곳'으로 여겨지게 됐다.
↑ SK엔카 중고차 보증 서비스 [사진제공=SK엔카닷컴] |
딜러도 온라인 광고를 통해 차량을 판매할 수 있게 됐다. 시장을 찾아오는 소비자를 기다리거나 소비자를 찾아갈 수고를 덜 수 있게 된 셈이다.
새로운 판매루트가 생겼지만 소비자와 직접 대면 판매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독차지했던 중고차 업계가 SK엔카를 곱게 볼 리 만무했다. 업계는 대기업이 '영세'한 중고차 종사자들의 밥그릇을 빼앗는다며 당시 여의도광장에서 5000여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반대집회를 열었다.
그러나 이 대규모 집회로 오히려 SK엔카가 소비자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보도되면서 SK엔카는 수십억원의 광고 효과를 공짜로 거둬들였다.
중고차 종사자들을 신뢰하지 않는 소비자들은 소비자 보호 장치를 갖춘 대기업의 진출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소비자 단체들도 환영했다. 소비자 보호 기능이 강화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SK엔카는 2001년 4월 서울 영등포에 첫 직영점을 열고 오프라인 중고차 매매사업까지 진출했다. SK엔카가 시장에 정착하면서 비슷한 방식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고차 쇼핑몰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면서 춘추전국 시대가 열렸다.
덩달아 중고차 쇼핑몰을 '악용'하는 호객꾼들도 많아졌다. '허위 매물'이 대표적인 사기 행위다. 호객꾼들은 실제로 없는 매물을 있는 것처럼 쇼핑몰에 올려둔 뒤 싼 가격을 미끼로 찾아온 소비자에게 사기를 친다.
SK엔카는 허위 매물을 근절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성장은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지난 2007년에는 업계 최초로 '클린엔카 캠페인'을 통해 허위 매물 신고제, 삼진아웃제, 워터마크제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전담 팀을 구성해 매물 감시 활동을 진행하고 허위 매물이 확인되는 즉시 매물 삭제 및 해당 딜러의 이용 정지 조치는 물론 허위 매물 판매 기록이 있는 판매자를 기록해 추적 관찰했다.
SK엔카는 스마트폰 사용자가 늘어나던 지난 2010년에는 스마트폰을 이용해 중고차를 사고파는 모바일 어플리케이션도 업계 최초로 선보였다.
업계 최초로 차량번호 검색 서비스도 도입했다. 차량번호만 입력하면 모델명, 등급, 신차가격, 연료, 배기량, 연비 등 차량의 상세 정보뿐만 아니라 동급 매물의 중고차 시세 정보까지 확인할 수 있게 했다.
높아진 소비자 눈높이에 맞춰 기존 진단·보증 프로그램도 개선했다. 전문 진단평가사가 거래될 차량을 직접 살펴보고 사고 유무, 프레임 이상 유무, 외부 패널의 교환 여부, 옵션과 등급 등을 평가한다. 진단 결과 오류가 발견될 경우 3개월 5000km 이내에서 진단비의 최대 20배를 보상해 준다.
↑ 중고차 상담 장면 [사진제공=SK엔카닷컴] |
6개월 1만km 범위에서 엔진, 미션, 제동
SK엔카에는 지난해 총 116만대의 매물이 등록됐다. 지난 2000년 등록 대수가 1만5000여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18년 동안 80배 가량 성장한 셈이다.
[디지털뉴스국 최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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