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술 깨는 약으로 알려진 ‘RU21’. 윤제균 감독은 이 약을 또 한 알 입에 털어 넣었다. 소주 반병만 마셔야 한다는데, 이미 한 병을 넘어 두 병째가 되고 있었다. 테이블마다 돌며 술을 한두 잔씩 마신 탓에 얼굴이 벌겋게 상기됐지만, 윤 감독은 얼굴에 기쁨도 가득했다. 영화 ‘국제시장’이 1000만 관객을 돌파하고도 여전히 흥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취재진을 만난 자리에서다.
윤 감독은 “모든 걸 다 떠나서 관객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가장 크다”고 했다. “관객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임을 알게 됐다”고 했다. 천만 돌파 감사 무대인사 등으로 계속 관객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영화의 만듦새가 어느 정도 괜찮다면 관객 700만~800만 명까지는 간다고 보는데 1000만 명을 넘는 건 관객이 좋아하는 것에 더해, 운도 따라줘야 하고 이슈도 생겨야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앞서 ‘국제시장’은 색깔 논쟁이 벌어졌고, 사람들은 ‘왜 이게 색깔을 덧칠해야 하는지?’ 혹은 ‘어떤 색인지 눈에 뻔히 보이는 영화’라는 시선을 보냈다. 중요한 건 양측 모두 영화를 보고, 흥행에 도움을 줬다는 사실이다.
지난 2009년 영화 ‘해운대' 이후 2번째 ‘쌍천만’ 감독이 된 그는 이제는 담담해졌다. 소감이 남다를 법한데 “그저 관객에게 고마운 마음뿐”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4개월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났을 때 “포스터만 보면 돈 쓴 티가 너무 안 나서 걱정이다. 이게 무슨 180억 원이 들어갔다고 생각하겠나?”라고 했었는데, 관객을 사로잡게 됐으니 다행이라는 표정이었다.
기자들과 관객의 입장에서 흥남부두 철수, 이산가족 상봉, 노인이 된 덕수가 “아버지, 저 진짜 힘들었거든예”라고 말하는 장면 등에서 눈물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하자, 윤 감독은 감동을 주려고 만든 포인트들이 관객과 교감을 잘했다는 생각에 흐뭇해했고 만족스러워했다.
사실 윤제균 감독은 이제 ‘쌍천만’ 감독이라는 국내 유일무이한 별칭을 얻었지만, 그의 과거가 화려하기만 한 건 아니다. 과거 코미디 ‘두사부일체’, ‘색즉시공’ 같은 영화로 관객을 웃겼다. 하지만 야심 차게 준비한 ‘낭만자객’이 처참히 실패했다. 절치부심한 그는 ‘해운대’로 재기에 성공해 여전히 달리고 있다.
영화 개봉 뒤 항상 취재진을 만나면 장난과 진심 중간 정도로 “영화가 마음에 안 들면 아예 기사를 쓰지 말아 달라”고 하는 윤 감독. 개인의 취양은 다 다른데, 관객의 영화 관람 욕구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기자들이 상대가 하지 말란다고 안 하는 부류는 아니니, 윤 감독의 몇몇 작품은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제작에 참여하고 기술적인 도움을 준 영화들로 혹평도 많이 들었다. 대표적으로 영화 ‘7광구’에 참여해 도움을 줬다가 쓴맛을 제대로 보기도 했다.
두 편의 천만영화로 충분히 흥행의 맛을 본 그는 이제 감독으로서 자신에 대해 “내려갈 일만 남았다”고 했다. “이제 또 나한테서 어떻게 천만 영화가 나오겠느냐? 멋지게 내려가고 싶다는 바람뿐”이란다.
물론 그럼에도 아직 그는 계속 영화를 제작하고 연출도 할 예정이다. 영화제작사 JK필름에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윤 감독이 각색에 참여한, 박무택 대원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히말라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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