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여수정 기자] 어떤 이는 ‘사랑 앞에 나이 없다’ 말하고, 또 다른 이는 ‘나이 앞에 사랑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50대 중반의 화장품 회사 마케팅부서 중역 오상무(안성기 분)와 70살 연애초보이자 장수마트의 오랜 모범 직원 김성칠(박근형 분)에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어쩌면 사랑하기에 앞서 나이를 떠올리는 것 자체가 사치일 수도 있겠다.
영화 ‘화장’과 ‘장수상회’는 그동안 작품의 소재가 되지 못했던 ‘노년층의 사랑’에 집중했다. 청춘들 못지않게 뜨겁고 순수하고 아름다운 이들의 사랑이 보는 이 마저 설레게 만든다. 거기에 단순히 아름다운 사랑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삶과 죽음에 대한 경계, 순간의 행복, 일상의 소중함, 사랑의 위대한 힘 등 묵직한 메시지까지 전해 친절하고 착하다.
‘화장’ 속 오상무와 ‘장수상회’ 김성칠은 생김새는 다르지만, 그 놈의 사랑 덕을 톡톡히 보며 관객을 울리고 웃기며 시종일관 자신들의 감정선을 따라가게 돕는다. 비록 두 사람의 나이 대는 정해져있지만 누구나 느꼈을 법한 ‘사랑’이란 감정을 오상무스럽게 또는 김성칠스럽게 표현하며 공감대까지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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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스틸 |
은주를 향한 상무의 마음이 여자로서 느끼는 사랑인지, 직장상사로서 느끼는 애정인지 아슬아슬하다. 급기야 은주에 대한 야릇한 상상까지 하지만, 두 사람이 접촉하거나 아리송한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는다. 그래서 더욱 관객까지 짜릿하며 상무와 은주의 관계를 숨죽여 지켜보게 된다.
또한 부서 회식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중 자꾸 머릿속에 맴도는 은주를 보기 위해 한걸음에 달려가는 상무의 모습은, 영락없이 사랑에 빠진 남자다. 그러나 여전히 아내 생각을 멈추지 못하며 고뇌한다. 이 부분에서 진지한 배우 안성기의 예상치 못한 귀여움을 느낄 수 있다.
오상무는 안성기가 연기했다. 연기력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는 건 물론이거니와 평범한 가장으로 열연했음에도 존재감과 분위기는 엄청나며 비범해 보이기까지 하다. 특히 보기 만해도 아픈 것 같은 병원과 생기발랄한 회사 속에 있는 상무의 표정은 눈에 들어올 정도로 큰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충분히 상무의 극과 극 감정을 관객에게 전달하고 있다.
애정인지, 사랑인지 애매모호하지만 분명 그놈의 사랑 때문에 상무는 초반과 달라졌다. 암이 재발한 아내를 곁에 두고 다른 여자에게 설렌다는 게 여자 관객의 입장에선 속상할 만도 하다. 하지만 극한 상황 속 설렘이 한 남자의 인생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확인할 수 있고, 어려운 상황이기에 더욱 사랑의 위대한 힘이 전해진다. 거기에 한 남자의 떨림만으로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과 삶, 죽음에 대해 생각할 기회까지 줘 시작은 단순했지만 끝은 묵직하다.
사랑을 통해 묵직한 메시지를 안겼던 오상무와 달리, 김성칠은 시작은 까칠하지만 끝은 훈남 할아버지의 정석이다. 까칠함 빼면 시체인 성칠은 앞집에 이사 온 임금님(윤여정 분)과 딸 김민정(한지민 분) 때문에 아침부터 목소리를 높인다. 이삿짐 때문에 차가 들어섰고 이 차가 자신의 길을 막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성칠과 금님은 스치듯 인연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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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포스터 |
까칠한 줄만 알았던 성칠은 사랑 덕분에 잘 웃고 한층 밝아졌다. 급기야 자신을 잘 따르는 마트 사장 장수(조진웅 분)에게 연애 비법을 전수받으며, 늦깎이 연애에 제대로 맛 들렸다. 어설프지만 성공적이며 로맨틱한 데이트를 위해 노력하는 성칠의 모습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며 사랑 앞에 누구나 다 약자(?)임을 알려준다.
성칠의 늦깎이 연애는 놀이동산 데이트에서 빛을 발한다. 토끼 머리띠를 하고 사랑하는 금님을 위해 놀이기구에 몸을 맡긴다거나, 금님의 가방을 손에 들고 여자 화장실 앞에서 그를 기다린다. 떨리는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는 보너스다.
격정적인 사랑이 아니라도 괜찮다. 잔잔하면서도 풋풋하고 진실이 느껴진다. 마주 앉아 웃거나 상대방을 떠올리는 성칠과 금님 덕분에 관객들까지 설렌다. 데이트를 하는 이는 두 사람인데 괜스레 미소가 올라가는 셈이다. 특히 성칠과 금님이 사랑이 젊은이들의 사랑과 다른 건, 끝이 얼마 남아있지 않음을 알기에 더욱 간보지 않고 매순간마다 최선을 다한다. “지금 너무 행복하지 않아요?”라고 성칠에게 묻는 금님의 대사는 분명 로맨틱한 말인데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한다.
초반 늦깎이 연애의 참 맛을 관객에게 알렸다면, 후반 부에 갈수록 예상치 못한 두 사람의 비밀이 공개돼 반전 그 이상이다. 물론 이 반전을 사전에 암시하기도 하지만, 워낙 설레고 풋풋한 장면이 이어져 두 사람의 감정에만 집중하게 된다.
성칠 역을 연기한 박근형의 연기에 대해 감히 무어라 언급할 수 없다. 그냥 이름만으로도, 윤여정과의 조화만으로도 믿고 보게 된다. 성칠은 흔한 할아버지이지만 박근형 덕분에 특별한 할아버지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까칠함과 귀여움뿐만 아니라 눈물샘까지 자극하는 팔색조로서 영화 러닝타임동안 관객을 들었다놨다한다.
밝고 유쾌한 사랑을 통해 삶과 죽음, 가족애, 일상 행복, 더 나아가 부모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아들, 딸이자 꿈 많던 소년 소녀였을 부모님의 일대기, 건강 등의 소중함을 깨닫게 만들어 매우 훌륭한 가족영화다. 거기에 눈물을 쏙 빼놓는 명장면도 가득해 한 편만으로도 충분하다. 영화를 보고 나온 후 “내 이름은 김성칠이오”라는 대사가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았음을 알게 돼 다시 한 번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어찌됐던 오상무와 김성칠은 ‘사랑’ 그 놈 때문에 울고 웃으며, 관객들로 하여금 많은 걸 느끼게 돕는다. 여기에 “세월이 흘러 변하는 건 나이 뿐이지,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고 청춘들에게 외치고 있다.
한편 ‘화장’과 ‘장수상회’는 오는 4월9일 개봉한다.
여수정 기자 luxurysj@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