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이다원 기자] 쪽대본이 드라마 제작 현장의 골칫덩이가 된 지 오래지만 앞으로도 개선되진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드라마가 상업성을 띠는 장르인 만큼 방송사나 외주 제작사의 수익을 위한 대본 수정 요구는 더 잦아질 것이고, PPL, 분당 시청률 등이 고려된 쪽대본은 수시로 날아들 거라는 것.
한 현직 PD는 “쪽대본은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국내 드라마 제작 시스템에 특화된 산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국내만큼 시청자 피드백이 뜨거운 곳이 어디 있느냐? 그걸 담아낼 수 있는 건 쪽대본 밖에 없다”며 “제작 현장이 오히려 대본에 맞춰가며 그로 인한 손실액을 줄이려는 현실적 방안을 택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실시간 반응에 의해 쪽대본이 만들어지는 거라면 방송하기에 앞서 만들어지는 사전제작 시스템도 하나의 대안이 될 터. 작가 의도대로 완성도 높은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고 방송 시간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풍성한 볼거리를 만들 수 있다는 강점도 있었다. 그러나 업계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사전제작제도가 이상적인 대안 같지만 실제 사전제작 작품은 100% 망한다. 시청자의 반응을 전혀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청률이 안 나오니 방송사가 편성을 내주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라며 “완성된 뒤 썩히는 작품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라 제작사들도 사전제작은 꺼리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 디자인=이주영 |
이처럼 업계 관련자 대부분은 쪽대본이 앞으로도 없어지지 않을 방식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렇다면 기댈 것은 하나, 바로 법적 근거다. 쪽대본으로 인한 손실 혹은 방송사고를 막기 위한 법적 울타리는 얼마나 강력할까.
실제 방송 환경을 바꾸기 위한 법적인 노력은 지난해부터 진행됐다. 방송프로그램 제작 표준계약서와 방송출연 계약서에 관한 내용이 담긴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이 시행된 것. 이 안엔 쪽대본 문제 개선을 위해 촬영 이틀 전까지 대본을 제공해야 하고 배우들의 하루 최대 촬영시간은 18시간 이내로 제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실효성은 적었다. 강제성이 없는 권고 수준이기 때문. 아직은 작품 혹은 배우와 제작진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나 다름없었다. 법의 존재는 알고 있지만 이를 준수하는 제작 시스템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 사진=MBC SBS 제공 |
결국 제작진의 인식 개선이 쪽대본 사태를 해결할 유일한 열쇠로 남았다. 원론적인 해답이지만 몇 년 째 끊지 못한 쪽대본 악순환 고리를 잘라내려면 제작사, 방송사, 작가 사이의 원활한 조율이 이뤄져야 하는 셈.
이에 대해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쪽대본을 무작정 버리지 말고 강점을 살려 개선해야 할 방식이라고 당부했다. 그는 “해외에선 국내 쪽대본이 실시간 반응을 따라가는 거라 일정 부분 괜찮은 형식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대중과 함께 민감하게 움직이는 콘텐츠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라고 새롭게 바라봐야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요즘은 시청자들이 ‘본방사수’나 실시간으로 TV를 보는 게 아니라 다운로드로 몰아보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에 시간에 쫓기 듯 드라마를 찍어낼 필요가 없다”고 조언했다. 그는 “예전처럼 드라마에 순발력을 요구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작품 완성도가 더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이다원 기자 edaone@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