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설경구가 최근 진행된 MBN스타와의 인터뷰에서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진=쇼박스 |
‘살인자의 기억법’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은퇴한 연쇄살인범이 새로운 살인범의 등장으로 잊혀졌던 살인 습관이 되살아나며 벌어지는 범죄 스릴러다. ‘세븐데이즈’, ‘용의자’ 등을 연출한 원신연 감독의 신작으로, 김영하 작가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해 제작 단계부터 화제를 모았다.
“작품을 결정할 때 고민 없이 했다. 감독님이 같이 하자고 해서 고마웠다. 제안 받을 시기에 스스로 연기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수년간 캐릭터를 맡으면서 이대로 계속 하다간 훅 사라지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던 찰나에 이 작품의 시나리오를 받았다. 감독님과 만나서 작품에 대한 얘기를 나누면서 ‘제가 한번 해볼게요’라고 말했다. 큰 고민 없이 결정했다.”
설경구는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는 은퇴한 연쇄살인범 병수 역을 맡았다. 극중 병수는 어린 시절 엄마와 누나에게 매일 폭력을 휘두르는 아빠를 우발적으로 죽이고, 이후 세상의 나쁜 것들을 청소하는 연쇄살인범이 됐다.
“원작을 그대로 가져와서 영화를 만들었다면 아마 궁지에 몰리고 어떻게 풀어야할지 몰랐을 거다. 또 갇혀있는 느낌이 들었을 거다. 소설을 그대로 영상으로 가져오면 소설이 주는 매력을 영상이 반감시킨다고 생각했다. 원작에서는 병수가 살인을 쾌감을 위해서 한다면, 영화에서는 정당성을 부여했다. 자기만의 정당성에 대해서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설득력이 있는 건 절대 아닌데, 정당성을 위해서 은희(설현 분)와의 관계도 풀어진 듯하다. 소설에 비하면 폭넓진 않더라도 조금 자연스러운 관계도 만들어졌다. 그런 점이 소설보다는 여지를 많이 줘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세상에 불필요한 쓰레기를 청소한다는 명목으로 오랜 세월 살인을 저질러온 병수는 17년 전 연쇄살인을 그만두고 평범한 삶을 살아오다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게 된다. 희미해져 가는 기억을 붙잡기 위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녹음하고, 매일의 일과를 일기로 기억한다. 그러던 중 마을에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우연히 마주친 남자 태주(김남길 분)에게서 살인자의 눈빛을 읽어낸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병수의 시점으로 두 시간 가량을 끌고 간다. 병수는 희미해져가는 기억과 쌓여가는 기록들을 붙잡고 망상과 현실사이에서 혼돈을 겪으며 태주를 잡기 위해 마지막 살인 계획을 세운다.
“마을에 일어난 연쇄살인사건 현장에 가는 장면이 있는데, 병수에게서 지나간 기억이지만 ‘혹시나’ 하면서 사건 현장을 가보고, 자기도 모르게 추적한다. 그러다가 ‘나일까? 나 아니야?’ 하는 혼돈도 있고, ‘나 일수도 있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런데 그걸 망상이라고 생각하면서 연기하지 않았다. 그건 편집에 맡겨야한다고 생각했다. 저는 현실이라고 생각하면서 연기했다.”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없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은퇴한 살인범이라는 역할을 구축해나가기에는 설경구 역시 부담이 적지 않았을 거다. 그는 “망상 속의 연기를 한게 아니라 현실이라고 생각해서 정신적으로 힘든 점은 없었다. 그러나 강박은 있었다. 그리고 스스로 무슨 고민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잠을 못자겠더라. 계속 생각이 꼬리를 무는데, 내일이 걱정되고, 하루하루 해결하는 게 힘들었다. 감독님한테 가장 많이 했던 말이 ‘어떻게 해야해요?’였다. 감독이 최종적으로 결정을 해야 하니까”라면서 “병수가 정상적인 인물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상을 안사는 인물도 아니다. 대화가 안되는 사람도 아니다. 남들과 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을 뿐이고, 남들과 조금 다른 것뿐이라, 조금 어려운 점은 있었다. 일단 한번 해보자 라는 마음으로 촬영했다”며 남다른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설경구는 이번 영화를 통해 혹독한 체중감량 뿐만 아니라 분장에도 공을 들였다.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 젊은 시절부터 알츠하이머에 걸린 50대 후반의 모습까지 다양한 연령대를 보여줘야 하는 만큼, 과거와 현재의 차별화를 위해 분장을 피해갈 수 없었다.
“언론시사회를 통해서 영화를 봤는데 병수의 겉모습이 굉장히 신경 쓰였다. 저걸 보시는 분들이 과연 설득 될까, 가짜 같다고 느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했다. 사소하게 가발이 이상하게 날리면 저게 방해되면 어쩌지 라는 생각이 들었고, 분장으로 잡티를 만들었는데 영화를 보면서 왜 저게 일정하지 않지, 왜 도드라져 보이지 라는 걱정을 하면서 봤다. 그러다 보니 영화를 제대로 못보고 내용을 뒤쫓아 가게 됐다.”
설경구는 앞서 전작의 ‘불한당’에 이어 이번 ‘살인자의 기억법’에서도 아이돌 출신 배우들과 함께 호흡을 맞췄다. 그는 그들에 대해 한 번도 아이돌 출신이라는 편견을 가진 적이 없다고 밝혔다.
“아이돌 출신이라고 생각하고 한 적 없다. 영화를 하고 작품을 하면 이미 배우라고 생각한다. 굳이 아이돌 출신이라고 인식을 하지 않는다. ‘감시자들’때 이준호도, ‘불한당’때 임시완도, 이번에 설현도 아이돌 출신이라고 생각한적 없다. 같이하는 동료라고 생각한다. 한 울타리 안에서 같이 작업하는 동료다.”
김솔지 기자 solji@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