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언컨대 봉준호 감독을 향한 오랜 애정은 존경심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마침내 하나의 장르가 된, 그의 ‘기생충’을 본다면.
영화는 전원백수인 ‘기택’네 장남 ‘기우’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사장’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이 이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번져가는 이야기를 담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의 공포에 대한 봉준호표 코미디와 날카로운 통찰, 씁쓸한 탄식이 제대로 녹아 있는 현실적인 희비극. 섬세하고도 오락적인 동시에 예술적인, 진정 봉준호 월드의 진화를 목도하게 하는 놀라운 완성도를 자랑한다.
영화 속에는 그동안 현실에 대한 발언을 담아 온 봉 감독의 절규와 실소, 그럼에도 끝까지 놓을 수 없는 희망이 (그의 작품 사상) 가장 뜨겁고도 차갑게 담겼다. 풍성한 볼거리와 풍자적인 서스펜스, 완벽한 드라마가 그의 천재성을 제대로 입증한다.
신선한 설정에서 시작하지만 웃고 떠드는 사이 어느새 우리 사회의 아픈 자화상을 대면하게 된다. 그래서 비명을 지르게끔 하는 끔찍한 상황도, 저마다 살아 숨 쉬는 캐릭터들의 행동에 터지는 웃음도, 섬뜩한 반전 끝에도, 결국 목도하는 진실에 아련하고도 씁쓸함이 깊이 박힌다.
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최우식 박소담 이정은 장혜진 등 신구 베테랑 배우들의 연기력 역시 단연 최고다. 특히 조여정 이정은, 두 여배우의 하드캐리는 웬만한 반전보다 더 빛나는 압도적인 영화의 무기다.
상생 또는 공생이라는 인간다운 관계가 무너져 내리고, 누군가 누구에게 기생해야만 하는 서글픈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 그런 세상 한복판에서 발버둥 치는 어느 일가족의 난리법석 생존투쟁을 지켜보면서 그들에게 ‘기생충’이라고 손가락질 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누가 있을까.
애초부터 기생충인 사람은 없다. 그저 벼랑 끝에 내몰린 우리의 이웃, 친구, 동료들이었을 뿐. 영화는 이토록 평범했던 이들의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를 통해 인생의 뒤엉킨 희극과 비극을 이야기한다. 도무지 멈출 수 없는 이들의 맹렬한 이야기에, 봉준호의 세계에서 헤어나오기
칸의 황금종려상을 품은 ‘기생충’ 보다, 봉준호를 품은 ‘기생충’ 그 자체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화가 끝난 뒤 봉준호에 대한 존경심이, 영화에 대한 잔상이 지워지지 않는 이유다. 30일 개봉. 15세이상관람가. 러닝타임 1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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