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술에 배부르랴, 당장의 허기짐이나 약간의 아쉬움은 충분히 견딜 만하다. 이 첫 발걸음으로 시작된 다음, 그 다음에 대한 벅찬 기대감 덕분이다. 나라를 빼앗기고 절망으로 점철된 시기, 그러나 그 아픔보다 그것을 이겨낸 위대한 정신을 더 분명하게 기억해야함을 자각하는 시작점이 될, 영화 ‘봉오동 전투’다.
여전히 그 시대의 무엇을 떠올리든 분노하고 가슴이 미어질 수밖에 없는 피해의, 지배의, 굴욕의 일제강점기. 그럼에도 그 잔혹한 슬픔 속에서도 결코 굽히지 않았던 민족의 뜻과 정신은 비로소 꽃을 피웠다. 그 자랑스러운 첫 승리의 날이 드디어 스크린에서 펼쳐진다.
1920년 6월, 봉오동에서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승리가 탄생했다. 만주 일대의 독립군을 소탕하기 위해 모인 수백명의 일본군을 상대로 독립군 연합부대가 대 승리를 거둔 것.
백전무패로 악명 높은 월강추격대를 필두로 남양수비대와 각종 신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 정예 병력이 진격해온 가운데 독립군은 자신들이 가장 잘 아는 봉오동의 지형을 활용해 필살의 작전을 세운다. 독립군들은 선제공격과 험한 지형, 기후 조건을 이용해 목숨을 담보로 봉오동 죽음의 골짜기까지 달리고 또 달려 일본군을 유인, 고립시키고 마침내 승리를 거머쥔다.
당시 봉오동에는 밟고 살 땅, 농사지을 땅, 죽어서 묻힐 땅을 찾겠다고 몰려든 전국의 이름 모를 독립군들로 가득했는데, 어제 농사를 짓던 인물이 오늘 독립군이 돼 이름 모를 영웅으로 살아간 시간과 그들의 승리에 대한 이야기만으로도 묵직한 울림을 선사한다.
능선과 계곡을 무기삼아 매복과 공격을 반복하는 예측할 수 없는 움직임으로 일본군에 맞서는 치열한 액션이 쉴 틈 없이 이어지고, 그 와중에도 툭툭 튀어 나오는 구수한 인물 간 정과 유머, 묵직한 메시지가 134분간 다채롭게 펼쳐진다.
다만 아쉬운 건 피날레다. 길고도 힘겨운 과정을 거쳐 비로소 마주하게 된 대승리에서 최고의 카타르시스를 기대했지만(마치 ‘어벤져스 : 엔드게임’의 마지막 전투 혹은 ‘안시성’의 클라이막스처럼)이를 충족시키진 못한다, 몇 몇 주요 인물의 빈약한 서사에 과도하게 촘촘히 매달린 탓에, 장시간 비슷한 패턴의 긴장과 웃음이 반복돼 힘에 부쳐, 카메라의 앵글이나 음악 등 활용의 아쉬움 때문에 ‘모두의 싸움, 모두의 승리’여야 할 연합군의 대규모 전쟁신에 대한 웅장함이나 먹먹함과 흡입력이 다소 부족하게 느껴진다.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전투와 잔혹한 묘사, 단순한 서사에 볼거리에 집중한 연출로 인해 역사적 사실 자체가 주는 울림 외 영화 내 서사적 깊이감은 다소 떨어지는 아쉬움이 있다.
감독은 결국 뜨거운 배우들과 더 뜨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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