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개성이 있고, 특성이 있는 것인데 일률적으로 비교해 누가 더 낫다는 식으로 평가를 받는 게 기분 좋은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들도 아마 그렇겠죠?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이 어제 트위터에 쓴 글이 화제입니다.
이 의원은 트위터에서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있었던 일화를 썼습니다.
때는 사학법 개정 문제 때문에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했던 2006년 4월 28일입니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의 원내대표를 맡고 있었던 이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의 전화를 받습니다.
"이 대표, 내일 청와대 관저에서 조찬을 할 수 있어요?"
여야 대치가 극심했고, 특히 사학법 개정은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보안법 폐지와 더불어 반드시 추진하겠다는 4대 법이었기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의 전화는 이 의원을 순간 당황케 했습니다.
초대에 응할 것인지, 아니면 강경 태도로 거절할 것인지 순간 갈등했지만, 대통령 초대에 응하겠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다음 날 아침 청와대에 도착하니 당시 여당 원내대표였던 김한길 현 민주당 대표가 먼저 와 있었다고 합니다.
노 전 대통령은 왜 여야 원내대표를 청와대로 함께 불렀을까요?
그것도 죽기 살기로 서로 헐뜯고 싸우는 상황에서 말입니다.
조찬을 마친 노 전 대통령은 김한길 대표에게 '김 대표님, 이번에는 이 대표 손들어주시죠'라고 말했습니다.
사학법 개정에 대해 여당이 야당에 양보해달라는 뜻이었습니다.
순간, 이재오 대표도 당황했고, 김한길 대표의 얼굴도 굳어졌습니다.
여야가 극한 대립을 보이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야당 편을 들다니요?
당황한 김 대표는 노 전 대통령에게 '대통령님, 당 분위기와 완전 다른 말씀을 하십니다'라고 정색을 하고 말했습니다.
사실 그랬습니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4대법 통과를 위해 모든 당력을 모으고 있던 터라 한나라당에 양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특히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이명박 서울시장과 함께 사학법 통과 저지를 위해 길거리 투쟁하고 있던 터라 더더욱 그랬습니다.
어제 시사마이크에 출연했던 정청래 민주당 의원이 전한 당시 분위기입니다.
▶ 인터뷰 : 정청래 / 민주당 의원
- "제가 김한길 대표한테 들었던 것은 원내대표가 되고 나서 청와대에서 한 번도 연락이 없었다가 처음으로 연락이 와서 갔는데 이재오 대표가 먼저 와 있더라는 거예요. 그리고 이재오 당시 한나라당 원내 대표 앞에서 ‘사학법은 양보해주라. 한나라당 손을 들어주라’ 는 식의 말씀을 하셔서 김한길 대표와 노무현 대통령의 사이가 결정적으로 벌어졌던 때가 그때라고 제가 들었어요."
(앵커) 대통령이 여당 원내대표 손을 들어주어야지 왜 야당 원내대표 손을 들어주느냐?
(정청래 의원) 예고 없이 그렇게 갑자기 말씀하셔서 ‘그렇게 할 수 없다. 의원총회에 가서 상의하겠다.’ 그래서 실제로 의원총회를 했습니다.
(앵커) 대통령 앞에서 당당하네요?
-그때 제가 기억이 나요. 제가 가장 강경 발언을 한 편인데 사학법에 대해서 일 점 일획은 커녕 반점 반 획도 바꿀 수 없다는 말을 했거든요. 저도 그때 친노 의원이라고 언론에서 썼었는데. 저는 이라크 파병이라든가 국가보안법, 사학법 부분에 대해서 노무현 대통령의 입장을 따르지 않았어요."
당시 김한길 대표가 받았을 충격이 어느 정도인지, 또 같은 자리에 있었던 이재오 대표의 놀라움이 어느 정도였을지 상상이 됩니다.
당 분위기와 배치된다는 김한길 대표의 말에 노 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당 분위기 잘 압니다. 지금 당이 내 말 듣겠습니까? 내 뜻이 그렇다는 겁니다."
김한길 대표는 '당에 가서 보고해야 되겠다'며 불쾌한 표정으로 먼저 일어나 나갔습니다.
대통령과 야당 원내대표를 두고 자리를 박차고 나간 겁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 김 대표의 행동이 무례하게 보일 수도 있고, 당당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겁니다.
어쨌든 열린우리당은 그날 의원총회를 열었지만, 결과는 대통령의 양보 요구 거절이었습니다.
집권 여당이 대놓고 대통령의 요구를 거절한 겁니다.
김 대표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나서 노 전 대통령은 이재오 대표에게 한 시간가량 청와대 구석구석을 안내해줬습니다.
대통령과 야당 원내대표가 한 시간가량 독대를 한 셈입니다.
이재오 의원은 이날 일을 떠올리며 두 가지를 배웠다고 트위터에 썼습니다.
첫째는 여당 원내대표가 대통령 앞에서 당의 입장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것
둘째는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정국이 꼬여 여야가 싸울 때는 야당의 손을 들어주는 여유가 있다는 것.
이재오 의원의 글은 여기서 끝납니다.
왜 이 글을 썼는지, 또 왜 노무현 전 대통령 일화를 꺼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글이 적어도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원내 지도부에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추측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박지원 민주당 의원도 트위터에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일화를 썼습니다.
1968년 2월 민주당 초선인 김상현 의원이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자, 박정희 대통령은 다음날 이후락 비서실장을 통해 면담을 흔쾌히 수락했다는 겁니다.
당시 분위기에서 대통령이 야당 초선의원의 면담 요구를 들어주고 1시간 40분가량 독대하기란 쉬운 게 아니었을 겁니다.
지금 정국은 국정원 국정조사 문제로 꽉 막혀 있습니다.
오늘 청문회가 열리지만, 핵심 증인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청장의 출석 거부로 무산될 위기입니다.
민주당은 새누리당이 핵심 증인들을 보호한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재오 의원의 글은, 박지원 의원의 글은 이럴 때 대통령이 나서라는 걸까요?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요구한 박 대통령과 2자 회담을 수용하라는 뜻일까요?
현재 꼬인 정국의 해법은 결국 박 대통령 손에 달린 걸까요?
물론, 이재오 의원은 지난 정부에서 새누리당 친이계의 핵심이었고, 박지원 의원은 야당 의원입니다.
이들의 글이 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위한 비판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쨌든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는 전적으로 박 대통령이 결정할 일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화는 현재 청와대에 있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어떻게 읽힐까요?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