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전술핵무기의 한반도 재배치 주장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따른 핵심 전력 배치가 한국에 집중돼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는 것이다. 12일 괌 기지에서 출발하려던 미군 전략폭격기 B-1B의 한반도 전개가 현지 기상악화를 이유로 하루 연기되는 등 북핵 대응책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것과 맞물려 전술핵 재배치 공론화가 급물살을 탈 조짐이다.
여당과 학계뿐 아니라 청와대와 정부 내에도 미군 전술핵의 한반도 재배치 필요성에 공감하는 인사들이 꽤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발 더 나아가 핵무기 배치에 반대기류가 강하던 야당에서조차 전술핵 재배치 필요성에 관한 언급이 터져 나오고 있어 ‘현실화’ 가능성에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12일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강력한 대북 억지능력 강화 방안이 다양하게 거론되고 있고 여기엔 미군 전술핵의 재배치도 빠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론 전술핵 재배치를 바라보는 청와대 속내는 매우 복잡하다. 중국의 반대는 명약관화하고 미국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 올초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한미 양국이 전술핵 재배치 문제를 논의한 바 있으나 미국이 반대해 진전을 이루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역시 한반도 전술핵 배치를 반기지 않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금까지 줄곧 북핵 폐기를 주장해 온 우리 정부의 입장이 180도 바뀌어야 하는 상황도 부담스럽다.
하지만 북한의 핵 실전배치가 임박해 북핵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뀐 만큼, 우리의 대응도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는 인식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와 관련해 박 대통령도 지난 9일 라오스에서 귀국한 직후 주재한 안보상황점검회의에서 “이제 우리와 국제사회 대응도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때마침 미국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핵 선제 불사용’ 구상(적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미국이 먼저 핵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어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에 전향적 입장을 보일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다.
청와대와 정부 일각에선 전술핵의 한반도 재배치 논의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드)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대중국 압박 카드로 활용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국책연구원의 한 전문가는 “북한이 5차 핵실험에 도달한 이면엔 중국의 안이한 판단이 있었다. 실제 중국은 북한의 핵을 위협적으로 느끼지 않는다”며 “그러나 한반도에 전술핵이 배치되고 일본·대만으로까지 핵무장론이 확산될 경우 얘기가 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한반도 전술핵 배치 주장이 중국으로 하여금 북핵 문제 해결에 보다 적극 나서도록 하는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정치권에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전술핵 재배치 논의가 점차 힘을 얻고 있다. 이날 원유철 의원을 비롯한 ‘북핵 해결을 위한 새누리당 의원 모임(핵포럼)’은 긴급간담회를 열고 여야가 공동참여하는 ‘국회 북핵 특위’ 설치와 미국의 전술핵 한반도 재배치를 주장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한민구 국방장관 등 군 당국은 핵무장론에 대해 “현재 정부의 입장은 한반도 비핵화이지만, 군에서 반영할 사항 있으면 반영하겠다”고 밝혔다고 원 의원은 전했다. 원 의원은 또 우리의 핵무장이 핵확산 금지조약(NPT)에 위반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관련조약 10조 규정을 보면 ‘심각한 위협에 직면하면 자위권 차원에서 탈퇴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야권 내에서도 비슷한 주장이 나와 관심을 끈다.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오늘 대통령과 여야 3당대표의 회동이 긴급하게 추진된다고 한다”며 “국민의 불안감 해소를 위해 전술핵의 주한미군 재배치문제에 대한 검토, 다음달 열릴 한미군사위원회와 한미안보협의회에서 도출해야 할 과제, 연내 북한의 추가 핵실험을 대비한 조치 등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논의를 해주길 바란다
[남기현 기자 / 우제윤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