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18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대권가도를 가로 막은 것은 여성 유권자들이었다. 남성 유권자들에게선 49.8%의 지지율을 얻어 박근혜 후보(49.1%)를 앞질렀지만 여성 유권자들로부터는 47.9%의 지지를 얻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이들은 박 후보에게 51.1%의 지지를 몰아줬다.
당시 투표를 할 수 있는 여성 유권자는 2048만명으로 남성 유권자(1998만명)보다 많았다. 이런 인구구조는 차기 대선에서도 계속될 전망이다. 여심(女心)을 잡는 후보가 대권에 한 발짝 더 다가가는 구도가 이번에도 재현될 것이라는 얘기다. 여성표의 매운 맛을 본 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뿐만 아니라 다른 대권 잠룡들도 여성표에 매달리는 이유다.
8일 109주년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유력 대선 주자들은 여성표 공략을 위해 저마다 정책을 쏟아냈다. 이들의 공약은 주로 고위직 공무원 등에 여성 비율을 올리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현실적인 여성 인재 풀의 한계 등으로 이러한 공약들이 선언적 의미 외에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문 전 대표는 이날 민주당 당사 프레스룸에서 "공약으로 약속드리기는 쉽지 않지만, 단계적으로라도 남녀 동수 내각을 향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실질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 전 대표는 '부천 성고문 피해자'인 여성학자 권인숙 명지대 교수 영입을 발표한 자리에서 "과거 참여정부 때도 역대 어느 정부보다 많은 정부직 여성 장·차관을 배출했는데 그런 노력을 한층 더 높여나가겠다"고 말했다.
특히 문 전 대표는 "지난 대선 때 50대 여성층에서 많이 졌다. 패인이었다"며 "50대 여성은 우리 사회의 모든 걱정거리를 안고 사는 세대로, 이를 해결하는 게 대한민국을 살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여성 정책뿐 아니라 경제·외교·안보 등 모든 영역에서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다"며 "제가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지만 부족한 부분이 많을 것이다. 여성들이 참여해 이를 채워주셔야 한다"고 말했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최소한의 육아휴직 사용률을 달성하지 못한 기업은 정부 지원대상에서 배제하는 내용 등을 골자로 한 여성정책 공약을 발표했다. 안 지사 측 박수현 대변인은 보도자료를 통해 "아이를 돌보는 부모의 몫을 공공부문이 덜어줘 여성경력 단절을 개선하겠다"며 "동종업계 여성고용률, 남녀 육아휴직 사용률을 비교해 최소한의 수준 미달 기업은 정책금융 등 지원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직장어린이집 설치의무를 강화해서 이를 준수하지 않는 기관의 제재를 강화하는 동시에 현행 '상시근로자 500명 또는 상시 여성근로자 300명'으로 돼 있는 직장어린이집 설치 대상도 '상시근로자 300명'으로 바꾸겠다고 공약한 것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도 같은 날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해 내각의 여성 장관 비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30%부터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안 전 대표는 "2015년 기준 OECD 국가의 여성 장관 비율은 평균 29.3%인 반면 한국은 5.9%"라며 "내각의 여성참여를 확대해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성평등 개헌을 추진하겠다"며 "이번에 개헌이 되면 헌법 제11조 개정을 통해 국가의 실질적 평등촉진 의무를 구체화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여성가족부를 국민 모두의 성평등한 삶을 보장하는 '성평등인권부'로 개편하고, 국무총리 산하 양성평등위원회를 대통령 직속 국가성평등위원회로 격상시키키로 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의 공약은 더 급진적이다. 이 시장은 "대통령이 추천하고 임명하는 내각과 기관장에 여성인재를 적극적으로 기용하고, 국무위원과 고위공무원단을 남녀 동수로 구성될 때까지 점진적으로 확대하겠다"면서 "공공기관과 금융기관부터 고위직 임원의 소수성 할당비율 30%를 의무화하겠다"고 공약했다. 특히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여성가족부를 성평등부로 전환하겠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이 시장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보장해 성별 임금 격차를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부모들을 위한 직장문화 역시 개선되어야 한다"면서 "본인이 희망하면 8시간 노동은 철저히 보장하고 현재 40%인 육아휴직 급여 대체율을 80%로 상향시키겠다"고 약속했다.
바른정당 대선 주자인 유승민 의원은 이날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있는 공영홈쇼핑 콜센터를 방문해 여성 상담원들로부터 감정노동의 어려움에 대해 의견을 들었다. 유 의원은 "콜센터 근무는 소위 말하는 감정노동이라 해서 온종일 전화 받는 스트레스가 아주 많을 것"이라며 "감정근로에 대해서는 아직 법규가 미비한 측면이 많다"고 말했다.
이날 실제 현장
[김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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