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박근혜 전 대통령(65·구속기소)이 침묵을 깨고 직접 법정에서 발언을 하고 '변호인단 총사퇴'라는 강수를 둔 것은 법리싸움으로는 승산이 없다는 점을 고려해 향후 재판을 정치투쟁의 장으로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사실상 선고형량 등은 신경쓰지 않겠다는 '재판 보이콧 선언'으로 풀이된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열린 80회 공판에서 박 전 대통령은 '배신'과 '보복'이라는 정치 프레임을 던졌다. 이는 소수로 남아 있는 자신의 지지층을 재결집시키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등에서는 여전히 박 전 대통령을 비선실세 최순실씨(61·구속기소)에게 속은 피해자로 여기고 있다. 과거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에게 덧씌웠던 '배신의 정치'를 다시 활용해 본인과 최 씨와의 공범 관계 자체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문재인 정부에서 '적폐청산'을 기치로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대해 대대적인 공세를 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새로운 혐의가 드러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국정농단 관련 혐의로 재판을 받은 피고인들이 1심에서 모두 유죄를 선고 받은 상황에서 박 전 대통령만 무죄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또 리얼미터가 이날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이전 정부에 대한 수사를 현 정부의 정치보복(26.3%)보다 적폐청산(65.0%)으로 보는 여론이 강한 것도 불리한 요소다. 이 때문에 오히려 자신과 문재인 대통령을 대결 구도로 설정하고 정권의 피해자로 본인을 규정하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또 자신이 몸담았던 자유한국당이 본인을 출당시키려고 하는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박 전 대통령의 법정 메시지는 지지자들을 다시 결속 시키는 효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주말에도 '박근혜 전 대통령 무죄 석방 서명운동본부'가 대학로에서 3000명 규모의 집회를 벌이고, '태극기시민혁명 국민운동본부' 역시 같은날 500명 규모의 태극기 집회를 갖는다. 오는 26일에도 박정희 대통령 서거 38주년을 맞아 추도식을 여는 등 대대적인 세몰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런 정치적 움직임이 강해질수록 향후 재판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이날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오후 기자간담회에서 "재판부가 박 전 대통령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은 적법한 절차이며, 이를 따랐다는 이유로 변호인들이 사임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향후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위해 피고인 측에서 협조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재판부 역시 "국민적 관심이 높아 실체 규명이 중요하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오히려 박 전 대통령 측은 구속 상태지만 법정 출두 거부 방식을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전례도 있다. 이들은 12·12 사태 및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내란 혐의로 구속기소돼 1심 중이던 1996년 7월 한 차례 법정 출두를 거부해 재판이 파행을 빚었다. 당시 변호인단이 "법원이 유죄 심증을 갖고 재판 신속성만 고려한다"면서 집단 사퇴를 했는데도 재판부가 재판을 강행하자 '출석 거부'를 선언했다.
박 전 대통령이 조속히 새로운 변호인을 선임하든지, 아니면 국선변호인의 조력을 받든지 상당 기간 재판 지연은 불가피해 보인다. 이날 재판부가 여러 차례 변호인 사임은 미결구금일수 증가로 박 전 대통령에게 오히려 더 피해가 간다고 언급했음에도 변호인단은 사임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정치권 등에서는 박 전 대통령의 최종 목표가 사면에 있다는 시각도 있다. 박 전 대통령은 "더 어렵고 힘든 과정을 견 겪어야 할지 모르지만 포기하지 않겠다. 저를 믿고 지지해주는 분들이 있어 언젠간 진실 밝혀질거라 믿는다"라고
[채종원 기자 / 이현정 기자 / 유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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