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3일 92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김종필 전 국무총리까지 세상을 떠나면서 1900년대 중·후반 한국 정치사를 풍미했던 3김시대의 모든 멤버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김 전 총리 측에 따르면 고인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신당동 자택에서 순천향병원으로 옮겨진 것으로 전해졌다. 병원 측에 따르면 김 전 총리 가족들은 이날 오전 김 전 총리를 자택 인근 순천향병원으로 옮겼고, 김 전 총리는 병원 도착 당시 사망한 상태였다. 김 전 총리는 노환으로 별세한 것으로 전해졌다.
1926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김 전 총리는 공주중·고등학교, 서울대 사범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지난 1963년 공화당 창당을 주도하고, 그해 열린 제6대 총선에서 당선된 뒤 7·8·9·10·13·14·15·16대를 거치며 9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또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총재를 지낸 김 전 국무총리는 박정희 정권·김대중 정부 시절 두 차례 국무총리를 지냈다.
김 전 총리 일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인연은 김 전 총리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본부로 배속됐을 때부터 시작된다. 육군본부 정보장교로 배정된 김 전 총리는 당시 전투정보과 상황실장이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 전투정보과장이었던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 등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인연으로 김 전 총리는 서울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박영옥 여사와 결혼한다. 2015년 세상을 떠난 박영옥 여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조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인척 관계로 묶인 김 전 총리를 이름을 부르기보다 '임자'라고 부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김 전 총리는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고 들어선 제2공화국 장면 내각 시절 '정군운동'을 벌이다가 항명 파동으로 강제 전역됐다. 예비역 중령 신분으로 5·16 쿠데타의 핵심적 역할을 맡았고, 이후 예비역 육군준장으로 특진했다. 군사정부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오른팔' 격으로 실세로 군림한 김 전 총리는 중앙정보부를 창설하고 초대 부장을 지내기도 했다.
군사정부의 민정 이양이 결정되자 김 전 총리는 민주공화당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계자로 여겨지기도 했다. 라이벌들의 견제로 여러차례 장기간 외유를 떠나기도 했던 김 전 총리는 '특명전권대사' 직함으로 1년 넘게 외국을 다니며 수교협상 임무를 맡기도 했다. 1964년 일본 오히라 마사요시 외상과 막후교섭으로 한일협정 성립에 큰 역할을 했고, 당시 작성된 '오히라-김종필 메모'는 한일협정의 초안이 됐지만 김 전 총리는 메모 파동으로 6·3사태가 일어나자 다시 외유를 떠나기도 했다.
특히 '김종필-오히라 메모'로 체결된 한일협정과 관련해 '한국과 일본 사이 일제강점기에 대한 모든 것을 없었던 것'으로 하는 한일기본조약 때문에 일본측의 명확한 사과를 받아내지 못하는 점은 지금도 비난을 받고 있다. 여기에 배상금 액수조차 '헐값'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1979년 10·26 사건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망하자 김 전 총리는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과 '빠른 시일 내 대통령 직선제 개헌'에 합의했다. 그러나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에 의해 정치 활동이 금지당했고, 1987년 민주화 이후에는 현실 정치에 복귀해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하고 대선에 출마했지만 4위에 머물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된 제15대 대선에서는 내각제 개헌을 조건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손을 잡은 이른바 'DJP연합'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 당선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DJP 연합의 성공으로 당시 자민련 총재였던 김 전 총리는 국무총리에 올라 공동 정부 한 축을 맡았다.
DJP 연합은 내각제 개헌 이행 여부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대한 의견 차이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대북 유화책에 이견을 보인 자민련이 2001년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안에 가담하면서 DJP 연합은 최종적으로 무너졌고,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정국 역풍 속에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자민련이 국회의원 4명 배출에 그치면서 김 전 총리도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정치적 행보를 보이지 않다가 2016년 대선을 준비하던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에게 "내가 비록 힘은 없지만 마지막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돕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으로는 아들 진씨, 딸 복리씨 1남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질 예정이다.
[정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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