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박준영(27·가명)씨는 올해 추석 인사를 부모님께 전화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하반기 공채를 앞두고 선뜻 고향에 내려갈 마음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상 가득 내어주시는 추석 음식도, 달콤한 깨송편도 그립지만 지금은 취업이 먼저라는 생각이다.
◆ "제발 요즘 뭐하냐고 묻지 마세요"
박 씨는 잠깐이라도 고향에 다녀올까 하다가 마음을 돌렸다. 모든 친척들이 모여들어 "요즘 뭐하니"라고 질문할 생각을 하니 눈 앞이 캄캄한 탓이다. 그렇지 않아도 취업이 늦어져 스트레스가 극심한데, 주위 사람들의 걱정 아닌 걱정을 들어줄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 1일부터 대기업 공채가 시작된 상황에서 집에 내려가는 건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이달 중순이면 LG그룹, SK그룹 등의 입사지원이 마감되고 삼성그룹의 공고도 예정돼 있다.
박 씨는 "아마 집에 가게 되면 취업했느냐, 요즘 뭐하느냐, 어떻게 하려고 이러느냐 등등 뻔한 질문들을 듣게 될 것"이라며 "괜히 스트레스 받느니 외로워도 서울에서 책이나 한 장 더 읽는 게 마음은 편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취업포털 사람인이 구직자 58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6%가 '추석연휴에도 구직활동을 계속 하겠다'고 답했다. 또 이들 중 절반은 '추석 뿐 아니라 지난 설에도 귀향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아울러 추석 때 가장 듣기 싫은 말 설문에서도 '요즘 뭐하고 지내?'가 33.7%의 높은 지지를 받아 근황에 대한 관심을 부담스러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뒤이어 '취업은 했어?'(18%), '올해 안에는 가능하니? 어떡할 건데?'(10.4%), '누구는 어디 합격 했더라' 등의 응답도 있었다.
◆ "이번 연휴에는 조용히 쉬려고 해요"
김아영(34·가명)씨도 사정은 다르지만 고향에 가지 않기로 했다. 엄밀히 말하면 김 씨는 추석 일주일 전 주말에 미리 집에 다녀왔다.
최근 연일 이어진 야근으로 지친 김 씨는 이번 추석은 집에서 조용히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계획이다. 바닥 난 체력을 보충하고, 스스로를 재충전하는 시간을 가지겠다는 것. 격무로 보지 못했던 친구들을 만나거나 전시회를 관람하는 등의 문화생활도 할 생각이다.
사실 김 씨가 고향에 가지 못하게 된 것은 상황이 여의치 않은 점이 한 몫 했다. 소속 부서장이 연휴에도 출근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연휴에도 일해야 하는 줄 알고 전전긍긍했다가 연휴를 앞둔 5일이 되어서야 '출근하지 않아도 좋다'는 확인을 받았다. 남들은 당연히 노는 날이지만 김 씨는 괜스레 휴일이 늘어난 것 같아 더 기쁘다.
김 씨는 "긴 연휴를 가족과 보내지 못하는 점이 아 이번에는 개인 시간을 가지며 조용하고 여유롭게 보내려고 한다"며 "사실 친척들한테 결혼 언제 하느냐는 질문을 받을까봐 걱정했는데, 이번엔 피할 수 있게 돼 오히려 나은 것도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취업포털 잡코
[매경닷컴 김잔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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