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애국심'을 갖게 하는 것이 저희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 |
↑ 사진=연평해전 포스터 발췌 |
2015년 6월, 길고 긴 제작과정 끝에 개봉된 영화 '연평해전'
2002년 발생했던 '연평해전'을 배경으로 만든 이 작품에는 배우나 감독, 제작사 외에도 숨은 공신이 있다. 지난 2013년 크라우드펀딩이 시작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영화의 개봉과 '연평해전' 알리기에 앞장섰던, 청년NGO <청년이 여는 미래>를 2015년 끝자락에 만났다.
홍대입구 역 근처에 위치한 작은 사무실.
<청년이 여는 미래> 신보라 대표와 홍원희 조직운영국장이 보인다.
2002년 모두가 월드컵 3·4위전의 열기에 빠져있던 그 순간 벌어진 교전.
어쩌면, 기억하는 이보다 기억하지 못하는 이가 더 많았을 '연평해전'.
이들은 이를 어떻게 알게 됐고, 무슨 이유로 영화 제작에 도움을 주려고 한 것일까.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휴전선이나 바다를 지키는 또 다른 젊은이들이 있기 때문에 행복이 가능한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했어요"
신보라 대표가 처음 연평해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 2010년 발생했던 천안함사건.
이를 계기로 주변에 보이지 않지만 사회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던 중이었다. 우연히 연평해전의 영화화 소식과 함께 해당 영화를 위한 크라우드펀딩이 난항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고, 그 길로 홍원희 국장과 함께 영화사를 찾아갔다. 이후 신 대표는 청년세대가 연평해전 자체를 모르는 것이 제작비 마련을 어렵게 하는 원인이라고 판단, 사건을 알리는 캠페인을 위한 서포터즈를 발족했다.
![]() |
↑ 사진=청년이 여는 미래 |
영화사에 찾아가 서포터즈 출범까지 걸린 시간은 단 20일.
영화사 역시 크랭크인을 눈앞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빠르게 일이 진행될 것 같았다.
하지만, 영화 제작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배급사가 바뀌었고, 그로 인해 시놉시스가 전체적인 수정에 들어갔다. 그 기간 동안 제작은 멈췄고, 주연 배우들은 길어진 제작 기간을 기다려 주지 못했다.
"기약이 없는 상황에서 공식적인 서포터즈 활동이 멈췄어요"
발족식 이후, 크라우드펀딩과 캠페인을 비롯한 다양한 활동을 진행해오던 서포터즈 역시 공식적인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 두 사람이 할 수 있던 것은 유족들과 끈을 놓지 않는 일이었다.
"(유족들을 영화의) 홍보용으로 활용하려고 하는 많은 사람들 중 하나로 우리를 인식하면 어쩌나 하는 고민이 있었어요"
신 대표의 말처럼 이전에도 유족들은 많은 상처를 받아왔기 때문에 책임감이 한층 무거웠다고 한다. 2013년 이전에도 여러 감독들이 영화화를 시도했던 사건이기에 영화 제작이 무산되는 것을 수차례 경험했고, 정치적으로 사건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수없이 만나왔던 유족들의 상처를 보듬어야만 했다.
![]() |
↑ 사진=청년이 여는 미래 |
대학생 신분으로 실무진을 담당하던 홍원희 국장은 길었던 서포터즈 활동을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에 대해, "다들 '우리 영화'라는 생각에 사명감이 들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자체적인 간담회나 간간히 들려오는 영화 제작의 진척상황을 접하다 보니 서포터를 했던 친구들과 끈을 놓지 않고 이어갈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햇수로 3년. 2015년 6월 드디어 영화 개봉을 앞뒀을 당시에 대한 소감을 묻자 두 사람은 모두 개봉일자를 확신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계속된 무산을 경험한 터라 이번에도 마찬가지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한 편으로는, 개봉을 한다고 해도 '대중들에게 관심을 받을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반신반의와 우려 속에 영화 개봉이 확정되고 시사회 날짜가 잡히자, 홍 국장은 "우리가 다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신나는 상반기를 보냈다고 말했다. 홍 국장이 서포터들과 연락하며 또 다른 실행을 계획하는 동안, 신 대표는 영화 개봉에 앞서 유족들을 찾았다. 유족들은 "전투장면은 보기도, 상상하기도 싫은 장면인데 아들이 죽어가는 장면을 마주해야 하는 게 두렵다. 용기가 날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어 "세상이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고 신 대표는 전했다.
다행히 영화는 600만 명을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도, 사건에 대한 관심을 끄는 것에도 성공했다. '역대 최고의 크라우드펀딩으로 제작된 영화'라는 기분 좋은 타이틀도 얻었고, 연평해전 용사들을 기리기 위한 숲 조성도 푸른 잎이 돋는 내년 봄 마무리될 예정.
성공리에 서포터 역할을 마친 홍 국장은 "'우리가 관심을 가져볼 가치가 있는 것들은 오래 걸리더라도 수면위로 오르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의미 있었다"는 소감을 전했고, 신 대표는 "영화 개봉이라는 목표는 달성했지만, 앞으로도 유족들과 연을 이어가는 것이 맞는 것 같다"며 유족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회를 위해 애쓰는 분들을 '예우'하는 문화가 '건강한 애국심'이라고 여기며, '건강한 애국심' 확산을 사명으로 생각하는 청년NGO <청년이 여는 미래>.
그들의 소망처럼 제대로 된 '예우 문화'가 갖춰지는 그날이 빨리 오길 기대해본다.
[MBN 뉴스센터 이소연 / mbnreporter01@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