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을 추억하고 동문들 간에 소속감을 높이기 위해 만들었던 대학 졸업반지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학과 후배들을 대상으로 한 강제모금 논란과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도입 이후 선의의 선물도 뇌물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다. 졸업하는 선배를 향한 축하의 인사가 '악습'이 됐다는 반성에서 나온 결과다.
30일 매일경제 취재 결과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기악과 피아노전공 학부생들은 졸업반지 제작 전통을 폐지하기로 했다. 지난 30여 년 동안 해당 학과는 1·2·3학년이 돈을 모아 졸업예정자에게 졸업 반지를 선물하는 전통을 이어왔다. 4학년 졸업생을 위해 한해 납부하는 돈은 1년에 약 6만원 남짓. 졸업을 앞둔 4학년들은 지난 3년간 약 20만원의 돈을 냈다.
하지만 지난 11월 중순 일부 1·2·3학년 학생들 사이에서 "졸업 반지 제작을 위한 모금은 악습"이라며 4학년 학생들에게 "약 30여 년간 전통을 지켜온 선배들에게서 악습을 대물림한 죗값이 있다"는 비판이 일었다. 이에 해당 학과 학생들은 이달 초 학생총회를 개최한 뒤 졸업 반지를 제작하는 전통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앞서 지난 10월 초 영남이공대 간호학과에서도 30년 전통으로 이어오던 순금 졸업반지의 명맥을 끊었다. 1학년 재학생이 국민신문고에 부당함을 제보했고, 학교 측이 즉시 환불하도록 조치한 결과였다. 대구보건대 간호학과도 2014년 초 신입생들의 반발 이후 반지 대신 기념품을 선물하는 방식으로 졸업 반지를 포기하는 등의 결정을 내놨다.
잇따라 대학가에서 졸업반지 제작 전통을 폐지하겠다는 결정을 내놓고 있지만 갈등의 씨앗은 여전히 남아있다. 졸업생을 위한 반지 비용을 내기만 하고 정작 자신의 졸업 때는 반지를 받지 못하는 일부 재학생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면서다.
영남이공대 간호학과에서도 4학년 학생들 중심으로 "졸업반지 비용을 내기만 하고 정작 우리는 받지는 못하는 불합리한 상황"이라며 "학교 측이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학교 측은 간호사 국가고시 응시료 등을 환급하는 결정을 내놨지만 학생들은 그 역시 '이미 받아온 혜택'이라며 반발하고 있
가장 최근 졸업반지 제작 전통 폐지를 결정한 서울대 기악과에서는 표결을 통해 "그동안 비용을 갹출해온 2·3·4학년 모두 피해를 감수하겠다"는 대승적인 결정을 내놨다. 하지만 이같은 결정에 일부 재학생들이 반발한다면 또 다른 갈등 상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유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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